[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희망으로 닦은 구두는 닳지 않는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자존심에 상처 입은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작품에서 '아홉 켤레 구두'가 상징하는 것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자존심이다.서영희 기자
 
소설에 등장한 '성남출장소' 자리에 세워진 대형마트와 아파트.
 
소설에서 권씨가 오르던 가파른 골목길을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가 전동카트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성남시 수정로 옛 성남출장소 뒷 골목길이다.
 
전북 완주 소양면 자택에서 부인 유계영 권사와 함께 한 윤흥길 작가.
 
윤흥길 작가 집필실


윤흥길(76)의 연작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기형적인 도시화의 모순을 꼬집은 소설이다. 77년 발표된 이 작품이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읽히는 이유는 주제의 시효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순진한 개인과 음험한 사회의 충돌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소시민의 우연한 현실참여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디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들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니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 깜짝할 새 동이 나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 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 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주워 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자신은 폭동을 벌이는 광주 대단지의 도시빈민과 다르다고 여겼던 주인공 권기용이 ‘시위하다 말고 엎어진 트럭에 벌떼같이 달려들어서 참외를 주워 먹는 군중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폭동의 선두에 서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권기용은 대학을 나와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며 가까스로 광주 대단지에 땅과 집을 마련한 선량한 소시민이다. 그런 그가 광주 대단지 폭동에서 이른바 과격분자의 행동을 했고 이 때문에 감옥살이를 해 소시민적 기반을 송두리째 상실한다. 그는 아내의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짓을 하다 실패하자 가출한다.

소설의 배경은 71년 8월 10일 발생한 ‘광주 대단지 사건’이다. 서울시의 판자촌 철거 정책에 떠밀려 경기도 광주군(현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으로 강제 이주당한 주민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벌인 집단 저항이었다. 68년 서울시는 판자촌 주민들에게 광주군 중부면 991만7355㎡(300만평)의 땅으로 옮겨가 살라는 ‘광주 대단지 사업 고시문’을 발표했다. 철거민들은 주택단지 조성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언덕배기 헐값 부지에 이주했다.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공중화장실도 변변하게 마련돼 있지 않아 주민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가까스로 대지는 마련되었으나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비바람을 가릴 여유는 아직 없어 땅을 묵히다가 또 간신히 낡은 텐트 하나를 구해서 버티기를 몇 달이나 했다. 선거철이었다. 지상낙원 건설의 청사진에 갖가지 공익들이 한 획 한 획 첨가되었다. 곳곳에서 기공식들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건설 붐이 일었다. 당장 막벌이 날품팔이들의 천국이 눈앞의 현실로 바싹 당겨졌다. 갈수록 선거 열풍이 거세짐과 더불어 지가가 열나게 뛰고 사람값이 종종걸음을 치고 하는 그 사이를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훨훨 날아다녔다.”

71년 서울시는 주민들에게 보름 만에 집을 지어 신고하라, 보름 만에 일시불로 땅값을 지불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다. 여기다 경기도에선 가옥 취득세를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발부했다. 결국 그해 8월 10일 불합리한 정책의 시정을 요구하며 입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 주민들은 경기 광주군 성남출장소를 습격하고 차량을 탈취했다. 당시 광주 대단지 일원은 6시간 동안 무정부 상태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민란’ ‘난동’ ‘폭동’이라고 말했으나 그것은 ‘생존 투쟁’이었다.

작품의 주요 무대인 경기도 성남시 수정로를 최근 찾았다. 성남시는 분당·판교 등의 신도시가 더 주목을 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수정로 숯골사거리가 중심지였다. 성남출장소 자리엔 현재 대형마트와 고급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옛 성남출장소 뒤편의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작중 화자인 오 선생과 권기용이 살았던 동네이다. “시청 뒷산 은행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는 단대리 시장 근처에 살았다. 숨통을 죄듯이 다닥다닥 엉겨붙은 20평 균일의 천변 부락이었다.”

권씨네가 오 선생의 문간방으로 이사하던 날 풍경이 쉽게 그려졌다. “짐 무게에 압도되어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근근이 언덕배기를 올라오고 있는 그 사내가 우리 집에 세 들기로 된 권씨가 틀림없다면, 그는 예정보다 나흘이나 앞당겨 기습적으로 이사를 단행하는 셈이었다.”

소설에서 그려진 것처럼 언덕과 고개, 좁은 골목에 66㎡(20평)로 구획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 구조는 아직 남아 있다. 권씨가 오르던 가파른 언덕길을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야쿠르트 배달 아주머니가 전동카트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자존심을 닦는 사나이

작품 중 ‘아홉 켤레의 구두’가 상징하는 것은 절대로 버릴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주인공 권기용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엉망진창이 된 구두를 번쩍번쩍거리게 닦는 작업으로 망가진 자존심을 세웠다. “이른 아침이었다. 문간방 툇마루에 앉아서 권씨가 구두를 닦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가 솔로 먼지나 터는 정도의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바탕과 빛깔이 다르고 디자인이 다른 갖가지 구두를 대여섯 켤레나 툇마루에 늘어놓은 채 그는 털고 바르고 닦는데 여념이 없었다.”

권기용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민중들을 대변한다. “난생 처음 이십 평짜리 땅덩어리가 내 소유로 떨어진 것입니다. 내 차지가 된 그 이십 평이 너무도 대견해서 아침저녁으로 한 뼘 한 뼘 애무하다시피 재고 밟고 하느라고 나는 사실은 나 이상으로 불행한 어느 철거민의 소유였어야 할 그것이 협잡으로 나한테 굴러 떨어진 줄을 잊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나한테는 이 세상 전체가 끽해야 이십 평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게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학의 그릇에 영혼을 담다

전북 정읍 출신의 소설가 윤흥길이 성남과 인연을 맺은 건 부임지 때문이었다. 그는 73년 성남의 숭신여자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해 가정방문을 하며 그보다 2년 전 일어났던 광주 대단지 사건을 접했다. 학부모들은 광주 대단지 사건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며 이야기했다. 사건을 거론하는 것조차 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쓰기 시작했다.

윤흥길은 77년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직선과 곡선’ ‘창백한 중년’ ‘날개 또는 수갑’ 등 네 편의 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일관되게 이어지는 연작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권기용이고 시대는 70년대, 장소는 경기도 성남시이다. 연작 소설은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사회의 모순을 소시민의 자존심과 분노를 통해 날카롭게 드러냈다. ‘직선과 곡선’은 권기용이 작중 화자인 ‘나’로 등장해 행방불명된 지 엿새 만에 돌아와 엿새 동안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창백한 중년’에서 섬유업체인 동림산업 잡역부로 입사한 권기용은 폐결핵에 걸려 해고당하고 팔까지 잃은 여공 안순덕을 도우려 한다. ‘날개 또는 수갑’에서 권기용은 안순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동림산업 측과 어려운 싸움을 계속한다.

많은 사람은 소설가 윤흥길이 어린 시절부터 기독신앙을 가졌으며 그의 작품에 기독교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기독교신앙이 몸에 밴 그는 소설의 내용을 설정하고 책 제목을 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기독교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직설적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다만 문학의 그릇에 영혼을 담아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소설 ‘장마’는 평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웃사랑과 인도주의 정신, ‘낫’은 갈등과 대립하는 두 세력 사이에서 이해·사랑·관용을 통한 화해란 주제를 담고 있다. 사이비 종말론의 소동을 통해 병든 세기말 사회를 풍자한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도 있다. ‘밟아도 아리랑’은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을 다뤘다. 귀소본능은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본향 의식과 일맥 상통한다. 문학의 그릇에 영혼을 담는 작업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 윤흥길처럼 생각하기
"신앙은 단단한 끈이 돼 멀리 가지 못하게 붙잡았고 생명의 줄이 됐다"


"기독교 교리나 사상을 담은 작품이 기독교문학이라 생각합니다. 선교문학이나 간증문학이 기독교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작업, 인생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세밀히 표현하는 작업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돕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5일 전북 완주 소양면 자택에서 만난 소설가 윤흥길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 기독교 사상과 그리스도의 사랑, 창조섭리를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부인 유계영(74) 권사와 함께 서울에서 내려와 자연을 가까이하며 글을 쓰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 하니 하나님의 신비하고 오묘한 창조질서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새 두꺼비 엉겅퀴 민들레와 교감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의 집은 해마다 벚꽃터널로 장관을 이루는 송광사 벚꽃길과 지근거리에 있다.

그에게 문학은 '영혼의 빈 그릇을 채우는 작업'이었다. 그는 가출하기 위해 문학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정말 수많은 가출을 경험했을 것이다. 밑 빠진 독과 같은 영혼의 빈 그릇을 채우기 위해 결국 문학을 통한 정신의 가출만이 허용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겐 공군 비행기 정비사로 복무하던 시절 격납고로 추락하는 비행기를 피했던 일과 84년 과로로 인한 반신마비 증세를 기도로 치유받은 간증이 있다. 이후 그의 신앙은 단단한 끈이 돼 언제나 그를 멀리 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뜻하지 않은 사고나 육체적 질병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생명의 줄이 됐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는 그동안 분단문제와 산업화시대에 따르는 평등·노동·분배 문제, 시대를 초월한 민족문제와 직결된 작품을 써왔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항상 민족문제와 기독교정신의 두 가지 문제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현재 그는 한민족의 정체성인 귀소본능과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본향의식을 연결한 장편 '문신'을 집필 중이다.

성남=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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