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기다리세요? 그 여름날 소나기

경기도 양평 서종면 수능리 '소나기 마을'은 황순원의 문학과 생애 전반을 볼 수 있는 문학관과 테마 숲이 조성되어 있다. '소나기 광장'의 소년소녀 동상이 '소나기'를 읽고 가슴 설렜던 독자의 애틋한 기억을 되살린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건너던 징검다리를 재현한 곳을 한 여행자가 건너고 있다. (왼쪽) 황순원의 서재. 군더더기 없이 소박한 모습이다.(오른쪽)
 
매일 인공 소나기가 내리는 소나기 광장.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 정신, 한국인의 근원적 심성을 탐미한 황순원(1915∼2000)의 소설은 전후(戰後) 한글 세대에게는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황순원은 일생을 통해 시 104편, 단편소설 104편, 중편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순수와 절제의 미학’으로 한국문학사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황순원의 고향은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 그런데 그의 문학과 생애 전반을 볼 수 있는 문학관은 경기도 양평 서종면 수능리에 있다. 그것은 단편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국민 단편’으로 불리는 ‘소나기’(1953)는 1959년 영국 인카운터(Encounter)지의 콘테스트에 입상, 게재됐다.

황순원 문학은 일제 말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고 한글 사용이 금지되던 불행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작가들은 이 시기 침묵을 지키거나 식민 통치에 동조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후자를 택했으나 그는 집에 틀어박혀 일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문학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작가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소나기마을’의 징검다리

양평군은 경희대학교와 함께 4만7640㎡(약 1만4000평) 규모의 문학공간 ‘소나기 마을’을 2009년 조성했다. 문학관의 외관이 특이했다. 중앙지붕이 단편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했던 수숫단 모양을 형상화한 원뿔형이다. 2층에는 유품 전시, 작품 체험, 문학카페 등 모두 4개의 전시실이 있어서 다양하게 작가의 작품과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소나기마을엔 소년이 소녀를 등에 업고 도랑을 건너던 ‘너와 나만의 길’, 소녀가 건넨 대추와 소년이 따던 호두를 소재로 호두 밤 대추를 딸 수 있는 ‘고백의 길’, 이들이 함께 건너던 징검다리를 재현한 ‘징검다리’, 소년과 소녀가 만났던 ‘수숫단 오솔길’이 있다. 그 길들을 걸으니 쓸쓸한 빛이 감도는 소녀의 까만 눈빛, 양산같이 생긴 노란 마타리꽃을 들고 웃는 소녀의 보조개, 소녀를 업고 불어난 도랑물을 건너는 소년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소나기마을엔 황순원의 대표작을 생각하며 거닐 수 있는 테마 숲길이 있다. 장편 소설 ‘일월’(1964년)을 주제로 한 해와 달의 숲, 단편 소설 ‘학’(56)에서 어린 시절 우정을 떠올리며 갈등을 승화한 장소를 재현한 ‘학의 숲’이 있다. 특히 5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이 된 ‘카인의 후예’(54)를 주제로 한 ‘고향의 숲’에서 발길이 멈췄다. 습한 흙냄새가 났다. 숲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 펼쳐졌다. 반달형 지형이 야산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간직한 이곳은 작가의 고향 마을과 비슷할 듯했다. 그의 고향은 장편 ‘카인의 후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구원의 미학

‘카인의 후예’는 광복 직후 평안도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의 원죄로까지 연결시키고 또 거꾸로 인류의 원죄라는 거대한 주제를 평안도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건으로 상징화하는 작업을 해냈다. 광복 직후 북한에서의 토지개혁 및 지주 계급이 탄압받는 이야기와 지주 계급 출신 지식인 청년 박훈과 마름(지주를 대리해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의 딸 오작녀 사이의 교감과 사랑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표제 ‘카인의 후예’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카인은 성경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며 동시에 인간 최초의 곡물 경작자였다. 그러므로 ‘카인의 후예’는 ‘범죄’와 ‘농민’이라는 중의적 이름이다. 주인공 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토지개혁이란 낯선 이념의 도입으로 질투하고 증오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였다.

그러나 이런 범죄가 훈의 고향 마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8선 이북 지역 전역에서 일어난 일이며 나아가 3·8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질투와 증오의 살인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만들어낸 ‘상황적인 악’이 천성적으로 착하지만 기회주의적인 도섭영감을 살기등등하게 만들고, 관조적이고 수동적이었던 훈을 점차 카인의 피가 되살아나 행동형 인간으로 변모시킨다. 인간의 근원적 악에 내몰린 훈은 스스로 속죄양이 될 각오를 하지만 이들을 구제하는 것은 오히려 사랑과 관습에 구속돼 끝까지 변하지 않았던 오작녀와 삼득이 당손이 할아버지 쪽이었다.

‘카인의 후예’는 동생 아벨을 죽인 구약성서 창세기의 인물 카인을 동족 간에 전쟁을 치렀던 우리 민족의 불행한 현실에 녹여냈다. 나아가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 카인의 후예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격변기에 적응하려고 허둥거리고 적응하지 못하고 짓밟히는 사람들은 앞선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카인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진 자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카인이 되고, 못 가진 자들은 욕심과 이념으로 윤리를 저버리는 카인이 된다. 현재 우리 사회에도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카인이 되고, 욕심과 이념으로 윤리는 저버리는 카인의 얼굴이 존재한다. 상반된 이념 갈등이나 욕망으로 형제인 ‘아벨’을 죽인 카인의 모습 말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카인은 아벨을 죽인 후에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며 에녹이라는 성을 쌓는다. 그의 장편 소설 ‘움직이는 성(城)’(73)은 바로 카인이 쌓은 에녹성을 역설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성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어 움직여질 수 없는 단단한 건축물인데, 그 성이 움직인다고 표현한 것은 역설적인 의미로 생명 없는 유랑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순수와 절제의 미학’을 지향하는 그의 작품세계엔 기독교적 가치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개화기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서북지역 출신인 그는 기독교계 학교를 거치면서 기독교사상을 내면화했다. ‘움직이는 성’에서 샤머니즘과 함께 기독교가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현세적 구복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죄성을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소설에서 나타내고자 한 통전적 구원사상은 개인의 영혼 구원과 함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구제와 치유, 자활 등이 강조되는 전인 구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나기의 소년’에서 ‘천국의 소년’으로

태풍이 북상하던 날 밤, 미열을 다스리기 위해 해열제 한 알을 복용하고 자리에 누운 노작가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2000년 9월 14일 문학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라는 신조를 꾸준히 지켜왔다. 때를 어기지 않는 소박한 식생활, 조용한 동네산책, 주일교회예배, 한 해 네댓 차례의 제자 모임 등으로 말년을 보냈다.

‘소나기 마을’의 산책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곳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소나기가 내린다. 물론 인공 소나기다. 거닐던 방문객들이 우왕좌왕 하더니 수숫단과 원두막으로 피했다. 마치 ‘소나기’ 속의 소년과 소녀가 된 듯.

■ [황순원처럼 생각하기]
늙으면서 아름다워지는 바람 욕망 아닌 기도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엔 오히려 안 쓰는 편이 낫다는 작가적 양심이 그저 쓰고 싶다는 욕심 앞에 제발 무릎을 꿇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의 의식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무의식의 세계를 그릴 때도 작가는 그걸 분명히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황순원(사진)은 1985년 고희를 맞아 거의 유일하게 쓴 산문인 ‘말과 삶과 자유’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그에게 있어 ‘글은 곧 그 사람’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휴머니티가 빛을 발하는 작품세계는 그의 투철한 작가의식을 반영한다.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길었다. 작품에 단 두 줄을 쓰기 위해 하루를 소비해 답사를 하고 생각날 때마다 메모지에 빽빽하게 썼다. 군더더기 없이 단아하고 소박했던 그의 서재는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언어를 벼리는 대장장이의 작업실 같은 곳이었다.

평생 경희대 교수로 지내며 세상이 흔들어도 집필에만 몰두한 그는 문학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과 순수성,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성찰하게 했다. 그는 “내가 용기를 잃지 않는 건 나도 늙으면서 아름다워지는 축에 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다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욕망이 아니고 기도이다”라고 말해 왔다.

특히 전후문학에서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뤘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오면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격동의 사건인 6·25 한국전쟁을 작품 배경으로 했다. 전후의 시대상과 힘겨운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휴머니즘의 온기를 잃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그는 그들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촉구했고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고 했다. 그는 문학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증거해 온 것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양평=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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