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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이장식 (5) 학과시험 붙었으나 대답하기 곤란한 면접관 질문에…
일제강점기 말엽 소나무에 V자형 상처를 내 송진을 채집하는 모습. 산림청 제공 5년의 중학교 시절은 내게 있어 축복의 시간이었다. 매년 한 번씩 열린 신앙수양회에서 송창근 박사, 김재준 목사, 한경직 목사 등 당대 유명했던 믿음의 선배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들을 보며 목사가 되겠단 꿈을 키웠다. 나는 1941년 4월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갔다. 바로 신학교로 가기보다 대학에서 좀 더 공부를 한 뒤 신학을 배우고 싶었다. 당시 조선엔 대학이 많지 않았다. 난 여비만 마련해 부산에서 연락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가...
입력:2021-06-14 03:10:01
[역경의 열매] 이장식 (4) 모든 중학생에 신사참배 강요… 행진 도중 숨어버려
계성중학교 시절 이장식 교수가 결성한 신앙동지회. 맨 앞줄 가운데가 이 교수다. 계성중학교 해럴드 헨더슨 교장은 인격자이며 교육자였다. 가끔 교목을 대신해 설교 말씀을 전할 때도 있었다. 미국 록키산 기슭에 살던 어느 부부가 야생 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집안에서 키우다 날려 보낸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독수리가 어느 정도 크자 산에 올라가 몇 번이고 날려 보냈지만, 새장에서 커서 자유할 줄 모르고 공중을 날다 다시 새장으로 돌아오더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늘 끝은 부부가 독수리를 날려 보내는 데 성공하는 이야기로 맺었다. 헨더슨 교장은 ...
입력:2021-06-11 03:10:02
[역경의 열매] 이장식 (3) 열다섯 나이에 주점 취직… 장학생에 뽑혀 학업 이어가
이장식 교수의 모교회인 진해 경화교회. 가운데 한복 차림의 강상은 목사가 서 있다. 보통학교 졸업 동기생 120명 중 중학교에 진학한 사람은 단 셋뿐이었다. 나는 진해 일본해군공작소에 취직 시험을 치렀다. 학과 시험은 통과했으나 색약이 발견되면서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어머니의 실망이 크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태연하셨다. 어머닌 행상을 하며 알게 된 일본인 주점에 나를 소개해 취직시켰다. 내 나이 겨우 15세였다. 이 시절 일본인 상점주인들 중에는 조선인 점원들을 학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 내가 만난 주인은 그러진 않았다. 다만 일은 고됐다....
입력:2021-06-10 03:10:01
[역경의 열매] 이장식 (2) 삶이 곧 신앙인 어머니의 모범과 감화로 믿음 키워
이장식 교수 어머니 박봉금(가운데) 여사가 아들 내외 및 손주들과 함께 1965년에 찍은 가족사진. 나는 1921년 경남 진해 동쪽 해안에 위치한 덕산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그만 마을이었다. 내가 다섯 살쯤 됐을 때 일본 군부는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을 철거시키고 거기다 비행장을 만들었다. 그런 우리 마을 옆으로 약 25리쯤 떨어진 곳에 경화동이라는 꽤 큰 동네가 있었다. 그곳엔 내가 다니던 경화교회가 있었다. 1905년에 설립된 진해에서 유일한 교회였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불신자 가정에 시집오면서 성경책과 찬송가책...
입력:2021-06-09 03:10:01
[역경의 열매] 이장식 (1) 시련과 고난의 지난 100년 세월 주께서 살게 하셨다
100세 신학자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5일 경기도 화성 ‘광명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자신이 한 세기를 살았다기보다 주께서 한 세기를 살게 하셨다고 했다. 인터뷰 며칠 전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많이 다쳤지만 웃음은 잃지 않았다. 신석현 인턴기자 100년을 회고해서 몇 마디로 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대의 변화도 많았으니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시종일관 생각하는 건 하나 있다. 지금껏 살아서 예수를 믿고 신학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란 것이다. ...
입력:2021-06-08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20·끝) 더 늦기 전 미래세대·자신 위해 믿음의 씨 뿌려야…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알게 된 뒤 교회와 가정, 일터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믿음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고백했다. 사진은 박 대표가 주일예배를 드린 뒤 경기도 수원 원천안디옥교회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 인생 3막을 살고 있는 나에게 ‘역경의열매’ 제안이 왔을 때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에 선뜻 나서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나님이 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누시려 하시는 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니 하나님은 ...
입력:2021-06-07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19) 인생 3막, ‘엔젤식스플러스’ 세워 창업자들 도와
6명의 전직 LG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은 긍휼의 마음으로 벤처 창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19년 엔젤식스플러스를 설립했다. 박종석 대표도 그 중 한명이다. 왼쪽부터 유진녕 전 LG화학 사장, 박진수 전 LG화학 부회장, 신문범 전 LG전자·LG스포츠 사장, 박종석 전 LG이노텍 사장, 김종립 전 지투알 사장과 이우종 전 LG전자 사장. 강민석 선임기자 인생 3막의 옵션 중 하나가 번아웃을 통한 교회봉사였다면 ‘문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찾는’ 달란트를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옵션이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내 힘이 닿는 ...
입력:2021-06-04 03:05:02
[역경의 열매] 박종석 (18) 번아웃 후 성경 완독…“성경은 인간에게 보낸 러브레터”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20년부터 경기도 수원 원천안디옥교회의 교육프로그램인 요한복음반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의 첫날엔 자신의 번아웃 경험을 간증하며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 감사로 마무리한다. 사진은 첫 강의의 슬라이드 마지막 부분. 요한복음에는 성경 말씀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진 구절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돋보이는 말씀이다. 나는 번아웃 후 처음...
입력:2021-06-03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17) 하나님과 나의 정체성 다시 생각하게 한 요한복음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지난 1월 경기도 수원 원천안디옥교회 주일예배에서 대표기도하고 있다. 지면을 빌려 짧게나마 요한복음의 매력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본 요한복음은 간결하고 멋지기까지 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요 1:1)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다. 마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의 선언과도 같다. 처음 이 말씀을 대했을 때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말씀이 하나님이라니” “말씀은 하나님의 일...
입력:2021-06-02 03:05:08
[역경의 열매] 박종석 (16) ‘번아웃’으로 깨달은 하나님 사랑… 교육 봉사로 갚아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2019년 11월 경기도 수원 원천안디옥교회에서 장로장립 예배를 드린 뒤 가족의 축하를 받고 있다. 인생 3막에서 선택한 옵션 중 하나인 ‘번아웃’의 경험은 봉사로 연결됐다. 번아웃에서 벗어났을 당시 교회에서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봉사였다. 처음 교회를 다닐 때 많은 분들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도들은 나를 웃는 얼굴로 대해 주셨고 기도해 주셨다. 교회 뿐 만이 아니었다. 회사 등 또 다른 나의 생활 반경에도 하나님은 내 주변을 믿는 사람들로 채워주셨다. 사랑에 빚진 자였던 나는 조금이나마 ...
입력:2021-06-01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15) 잘 다니고 있는 회사 그만두라는 목사님 기도에 “아멘”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19년 38년간 근무한 LG에서 퇴직하고 아내와 인생 3막을 설계하기 위해 한 달 일정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박 대표가 유타주에서 요한복음 8장 32절 속 ‘진리가 주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2016년 회사는 나에게 LG이노텍 대표라는 또 다른 중책을 맡겼다. LG이노텍 상황도 응급은 아니었지만 녹록지 않았다. 전자제품 속 부품을 만드는 회사라 속도감 있게 경영하던 MC사업본부와 달리 무게감 있는 경영이 필요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답게 성장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떠나도 회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
입력:2021-05-31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14) 예수님이 안아주신다는 느낌에 펑펑 눈물이…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14년 번아웃으로 주저앉았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평안을 찾았다. 왼쪽 사진은 번아웃 증상이 나타난 2014년, 오른쪽은 2016년 평안을 찾은 뒤 촬영한 모습. 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다. 나는 이 영을 이해가 아닌 경험으로 알게 됐다. 아내는 친구에게 번아웃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내 이야기를 했다. 아내의 친구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원천안디옥교회에 가 볼 것을 권유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았다. 그 교회 김장환 목사가 누군지도 몰랐다. 교회 3층 복도에 걸린 사진을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1973년 ...
입력:2021-05-28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13)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번아웃’이라뇨”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14년 LG전자 MC사업본부장 때 번아웃이 오면서 심신의 고통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표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피라미드 구조로 그렸다. 2014년 4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피곤하고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지만 쉴 여유가 없었다. 주요 전략 회의가 있었다. 이전에도 있었던 증상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지러웠다. 난생 처음 동네 병원에서 ‘링거’라는 걸 맞아봤다. 효과는 없었다. 다음날에도 아침 일찍 골프장을 찾았다. 업무상 골프 라운딩이었다. ...
입력:2021-05-27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12) 신선한 아이디어로 스마트폰 사업 궤도에 올려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LG전자 MC사업본부장 시절 구성원들과 함께 만든 스마트폰 등을 ‘브레인 칠드런’이라 부른다. 박 대표의 집에는 그때 만든 옵티머스뷰, 옵티머스G, G2, G3 등 브레인 칠드런이 아직도 있다. 생각의 맷집과 함께 아이디어에 근육을 키우는 것도 필요했다. 구성원들에게 ‘왜’를 반복하게 했다. 어떤 문제건 해결책은 있지만 해결 방안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왜’를 반복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카메라 성능 개선에 관한 예화를 소개한다. LG전자의 초기 스마트폰은 카메라 성능에 대한 시장 평가가 ...
입력:2021-05-26 03:05:02
[역경의 열매] 박종석 (11) 적자 내던 모바일 사업 맡아… 잠언 읽으며 지혜 구해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2010년 LG전자 MC사업본부장 발령을 받은 뒤 촬영한 프로필 사진이다. 이 사진은 2019년 박 대표가 은퇴할 때까지 사용됐다. 2010년 MC사업본부장 발령을 받고 첫 출근하던 날. 나의 하루는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시작됐다. 부담감에 밤새 뒤척였다. 출근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문득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성경 전체를 읽기 힘들면 잠언만은 꼭 읽으라고 하셨다. ‘내 아들아’로 이어지는 잠언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를 통해 말씀하시는 듯 했다. MC사업본부 초기 나는 잠언을 읽고 출근했다. 출근하며 머리에 떠오른 건 ...
입력:2021-05-25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10) 사업 승승장구 할수록 하나님과 거리는 점점 멀어져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PDP TV 사업부장이던 2009년 1월 경북의 구미사업장에서 열린 PDP사업부 신년모임에서 직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 맷집의 사전적 의미다. 권투 선수가 체력을 키워 맷집을 향상시키듯 기업과 사업을 하는 사람이 ‘생각의 맷집’을 키우려면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PDP TV 사업부장이 된 후 나는 구성원들과 ‘생각의 맷집’을 키우며 흑자전환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우선 매출을 올려야 했다. 당시엔 신모델 경쟁이 치열했다. 제품력을...
입력:2021-05-24 03:05:04
[역경의 열매] 박종석 (9) 엔지니어 출신으로 회사 미래 성장 위한 중책 맡아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PDP TV 사업부장이던 2007년 11월 경북의 구미사업장에서 구성원들과 사업 아이디어 내용을 점검하고 있다. 2004년 1월 LG전자는 파격 인사를 냈다. 파격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그동안 문과 쪽 사람들로 채워졌던 LG전자 전략기획팀장에 뼛속까지 엔지니어인 나를 발령 냈으니 말이다.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LG전자는 기술 중심의 회사인 만큼 기술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전략을 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사 직후 김 부회장은 나에게 미래 성장전략을 짜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디지털TV만 만들다 매...
입력:2021-05-21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8) 디지털TV 상용화까지 10년… 협업이 이뤄낸 쾌거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디지털TV 연구소장이던 2003년 연구원들과 함께 개발한 타임머신TV는 2005년 출시 후 일명 ‘박지성TV’로 불리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국민일보DB 디지털TV 개발은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무언가를 개발할 때 느껴지는 엔지니어만의 쾌감과 함께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사명감이 더해졌다. 일하면서도 신나고 재미있었다. 당시 정부는 LG전자를 비롯한 가전 4사,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과 함께 국책사업으로 디지털TV 사업을 지원했다. 디스플레이 등 디지털TV에 들어가는 주...
입력:2021-05-20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7) ‘디지털TV의 아버지’ 백우현 박사와 TV 사업 선도
박종석(TV 왼쪽) 엔젤식스 대표가 1997년 10월 LG전자 가전연구소에서 디지털TV 개발에 참여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 대표가 81년 입사한 금성사는 95년 LG전자로 사명을 바꿨다. 어머니는 나에게 ‘믿음의 우산’ 같은 분이었다. 나의 신앙도 믿음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았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컸지만 여전히 영적인 우산으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계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주일이면 온 가족과 함께 교회에 출석했다. 미국 유학 시절 때 한국 가면 어머니와 교회에 가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사실 1958년생인 나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LG...
입력:2021-05-19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6)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와의 이별… ‘찐 믿음’ 계기 돼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2002년 3월 돌아가신 어머니의 방에서 성경책을 발견했다. 박 대표의 어머니는 좋아하는 성경구절에 빨간 밑줄을 치며 읽으셨고 손주들에게 받은 편지를 성경에 꽂아 놓으셨다. 노년기를 맞으신 부모님은 주말이면 고향인 충남 예산으로 내려가 주말농사를 지었다. 2002년 3월에도 부모님은 평상시와 같이 예산에 가셨다. 골프장에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보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급성폐렴에 걸려 숨도 못 쉬고 있다고 했다. 서둘러 어머니가 입원한 천안...
입력:2021-05-18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5) ‘산본 집성촌’ 통해 신앙의 삶 시작… 행복했던 시절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1991년 5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의 HDTV 팀장으로 근무했다. 박 대표의 이름표와 달력에 금성사 마크가 선명하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의 HDTV 팀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일상을 떠올리면 행복했다. 그때를 나는 ‘산본 집성촌’ 시절이라 말한다. 어머니는 1990년대 초반 1기 신도시였던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 집을 마련하셨다. 나와 형제들도 자연스럽게 본가 근처에 모여 살았다. 집성촌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나는 모...
입력:2021-05-17 03:10:01
[역경의 열매] 박종석 (4) 사업 실패 후 공부로 목표 변경… 장학생으로 과학원 입학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1991년 5월 어머니의 기도, 아내의 헌신과 LG전자의 지원으로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은 학위수여식을 끝내고 전기공학과 건물 앞에서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찍은 모습. 어머니의 사업 실패로 나의 목표는 공부로 변경됐다. 그렇다고 마냥 공부만 할 순 없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났으니 장남인 나도 경제적 보탬이 돼야 했다. 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산학장학생으로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에 입학하는 거였다. 당시 정부는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해 과학원을 지원했다. 과학원도 경제와 산업...
입력:2021-05-14 03:05:02
[역경의 열매] 박종석 (3) 오디오 사업하던 어머니에게 “직접 만들자” 제안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1학년이던 1977년 어머니의 오디오 사업을 돕기 위해 미니 컴포넌트를 설계, 제작했다. 사진은 그때 만든 제품 중 하나로 박 대표 집에 있다. 대학 시절 나의 시간은 스스로 세운 삶의 목표에 나의 명철을 믿고 책임지는 시간이었다. 이는 믿음의 암흑기를 의미했다. 나는 공부와 사업이라는 다른 목표에 집중하며 살았다. 그 사이 하나님은 내 삶에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고 계셨다.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엔지니어, 경영자 기질을 물려주셨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했고 확신이 있으면 실행에 옮기던 ...
입력:2021-05-13 03:05:02
[역경의 열매] 박종석 (2) 갑작스런 고교 평준화에 반발… 반대 무릅쓰고 공고로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1974년 2월 서울 영등포구 강남중학교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백하건데 어릴 적부터 신앙의 깊이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 전부터 교회를 다니던 어머니는 결혼 후에도 신앙생활을 놓지 않았지만 자녀에게 강요하진 않으셨다. 대신 교회에서 심방을 오면 늘 대문을 열었다. 나 역시 집에 온 교회 사람들이 찬송하면 따라 불렀고 같이 기도했다. 그때 기억이 지금 내 신앙의 뿌리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임에도 엔지니어 기질만큼은 확실히 드러냈다. 손재...
입력:2021-05-12 03:05:03
[역경의 열매] 박종석 (1) LG맨으로 30여년, 쉼 없이 즐겁게 일하던 어느날…
박종석 엔젤식스플러스 대표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엔젤식스 사무실에서 LG이노텍 은퇴 후 자신의 삶과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최근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발표했을 때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LG전자 스마트폰은 늦둥이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LG에서의 38년을 돌이켜 보니 2019년 LG이노텍 대표로 은퇴할 때까지 평생 LG맨으로 살면서 꽤나 즐겁게 일했던 듯싶다. 즐겁게 일하니 성과가 따라왔다. 해외 가전업체들이 장악하던 텔레비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 디지털TV 시장을 선도하는 데 일조했다. ...
입력:2021-05-11 0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