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크리스천 예술가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죠”

서울 종로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작품 L‘attente 옆에 선 손석 화백. 손 화백은 “크리스천 예술가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으면 작가로서 최고의 영광이다”고 말했다.


손 화백의 작품 ‘무덤 속의 그리스도’는 관객의 위치에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무덤 속에 한 사람이 누워 있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몸은 뒤틀린 세상의 어둠을 반영한다. 얼굴도 창백하다.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에도 소재로 쓰였다. 이 명작을 오마주한 작품이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28년간 활동하며 입체적 회화 작품으로 독보적인 세계를 선보인 손석(67) 화백의 작품이다.

손 화백은 1995년부터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현재 한국에서 개인전 ‘L'attente-기다림’을 열고 있다. 2011년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이후 12년 만이다.

손 화백은 파리로 건너간 직후 초기 작업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구도자의 자세로 새로운 작품세계 구축에 몰입했다. 미학을 전공한 배경과 깊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표현 양식을 발전시켜왔다. 그의 작품들은 평면적 표현과 입체적 표현을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담아 착시와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다. 관객 위치에 따라 그림의 색과 이미지가 변하는 연출에 능하다.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감상하며 미적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손 화백은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에서 유학한 미술 교사였다. 손 화백이 어린 시절 벽에 과감하게 낙서하는 모습을 유심히 본 아버지 친구의 지도로 그의 나이 6살에 전북 군산 비둘기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손 화백은 “미술을 좋아해서 시작했다기보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달란트를 주신 것 같다”면서 “그 은혜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미술가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손 화백은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입시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은 당시 국내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번성했다. 40세가 될 무렵 그는 안정적인 환경을 뒤로하고 돌연 프랑스로 떠났다. 학원 사업은 잘 나갔지만 화가로서 자신만의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원래 목적지는 미국 뉴욕이었는데 문제가 생겨 갑작스럽게 프랑스 파리로 바뀌었다. 낯선 환경임에도 프랑스어를 독학해 1년 만에 파리 제8대학 조형미술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서 손 화백은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에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이전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이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색깔, 새로운 재료, 독특한 방법들을 이용해 작업을 시작했다.

6개월이면 될 줄 알았던 작품세계 구축에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손 화백은 “그 시간이 저한테는 고통이었다. 무엇이 나올지도 모르고 과연 내가 이런 행위를 하고 재료를 사용하고 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로 내게 돌아오겠느냐는 의심이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 신앙을 붙잡았다. 신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라고 생각해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신학책과 미술책을 읽었다. 그리고 정오부터 새벽 1시까지 작품에 몰입했다. 그렇게 지내던 3년째 어느 날 그는 “작품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줄만 그으면서 이미지를 겹치게 하는 양식으로 갔는데 하다 보니 자꾸 골이 올라오면서 ‘릴리프’가 형성됐다. 릴리프는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을 말한다. 손 화백은 “작가가 뭔가 알고 계획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본인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숨어있는 것들이 올라올 수 있다”면서 “이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저도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은 독특하다. 관객이 평면적으로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작품이 관객을 움직이게 만든다. 움직임에 따라서 작품이 변하기도 하고 빛의 양에 따라서 그림이 변하기도 한다. 손 화백은 이렇게 설명한다.

“의자를 하나의 의자로서 지각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정면 측면 뒷면 등 모든 것이 종합돼 하나의 입체로 파악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일상에서 너무 당연해서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듯 잊히는 일상 속 평범한 소재들을 예술 작품으로 끌어내 관객에게 선보입니다. 제 작품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내 몸에 사물을 인지하고 지각하는 장치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손 화백은 올해 전시 일정이 꽉 차 있다. 프랑스에서 여러 개 전시가 잡혀 있어 반년은 그곳에 체류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매체와의 작업을 연구 중이다.

손 화백은 퐁네프한인교회의 장로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예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을까.

“네 물론이죠. 크리스천 예술가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작품이나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함께 공유하고 나타낼 수 있으면 작가로서 최고의 영광이죠.”

글·사진=조재현 PD choj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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