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석 (8) 디지털TV 상용화까지 10년… 협업이 이뤄낸 쾌거

박종석 엔젤식스 대표가 LG전자 디지털TV 연구소장이던 2003년 연구원들과 함께 개발한 타임머신TV는 2005년 출시 후 일명 ‘박지성TV’로 불리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국민일보DB


디지털TV 개발은 여러모로 의미 있었다. 무언가를 개발할 때 느껴지는 엔지니어만의 쾌감과 함께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사명감이 더해졌다. 일하면서도 신나고 재미있었다.

당시 정부는 LG전자를 비롯한 가전 4사,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과 함께 국책사업으로 디지털TV 사업을 지원했다. 디스플레이 등 디지털TV에 들어가는 주변 기술을 개발해 시제품도 만들었다.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에선 디지털TV 시제품을 만들어 대중에 공개했다. 98년엔 세계 최초로 디지털TV용 반도체도 개발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전 세계 디지털TV 시장을 선도할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99년엔 디지털TV연구소장으로 승진도 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방송기술인연합회와 시민단체는 97년 미국식(ATSC방식)으로 정해 놓은 디지털TV 전송방식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이미 전송방식을 정하고 모든 준비를 상당히 진행한 2000년에 일어난 일이다. 2004년 미국식을 유지하기로 관련기관 간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나는 LG전자 대표로 각종 공청회와 회의에 참석했다. 연구원들과 기술개발에만 매진하던 나로선 사람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 알게 됐다.

그렇게 개발한 디지털TV는 결국 우리나라 수출 효자 상품이 됐다. 또 디지털TV 기술은 이후 LCDTV, 올레드TV 등 신산업에도 도움을 줬다. 디지털TV를 개발했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경험했다. 회사는 디지털TV 상용화까지 10년이 넘도록 기다려줬고, 백우현 박사를 비롯한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관련 지식을 공유했다. 정부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요 4:37)

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은 따로 있다. 후배 세대를 위해 씨를 뿌리는 건 선배의 당연한 책임이다. 사랑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하루, 하루 씨를 뿌리는 자세로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전송방식 논쟁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판매할 제품을 만들다 보니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디지털TV에 PC 기술을 접목해 화면을 자유자재로 녹화하고 지나간 화면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획기적인 TV를 생각했다. 2005년 ‘박지성TV’로 유명세를 떨친 타임머신TV다. 박지성의 경기를 생중계로 보던 아빠와 아들이 박지성의 슛이 골대 어느 쪽으로 들어갈지 내기를 하기 위해 잠깐 화면을 중단시키는 내용의 TV광고 덕에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LG전자의 타임머신TV는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연구원으로 성과를 냈지만 새로운 길도 모색했다. 인사철만 되면 희망하는 업무로 ‘경영’을 적어냈다. 이미 대학생 시절 어머니와 오디오 사업을 하며 경영자 마인드를 구축했다. 디지털TV를 개발하면서 정부와 소통하는 방식도 습득했고 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조직을 운용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그리고 연구원으로만 일하던 나에게 2004년 새로운 길이 열렸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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