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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트루디 (30·끝) 일상에서 주님의 삶 실천하고 동행하는 삶 살자
트루디 사모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2008년 국내의 한 공원에서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가족 사진을 촬영했다. 누구나 평생 마음속에 담고 있는 한 마디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래 가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의 유언일 수도 있다. 신앙인에게는 자신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나 신앙고백이 있다. 내 인생을 한 구절로 요약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꼽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
입력:2021-11-04 03: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9) 갑자기 심해진 허리 통증에 입원 “암이 많이 진전…”
트루디(오른쪽) 사모가 2010년 미국 LA에서 딸 김애설(가운데) 교수, 아들 김요한 목사와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2006년 가을, 한 강연회에 초청돼 미국을 방문했다. 강연 준비로 긴장한 상태라 몸의 상태를 잘 몰랐다. 어느 날 미세한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 통증은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았다. 그런데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 병원에 입원했다. LA에 사는 딸이 급하게 병실로 달려왔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암이 많이 진전된 상태입니다. 다발성 골수종 3기입니다.” ...
입력:2021-11-03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8) “거칠고 성한 데 없는 ‘아름다운 원장님 손’ 닮고 싶어요”
트루디 사모가 2014년 경기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1층에 있는 ‘블루밍 파이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파이숍은 늘 분주하고 손님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커피와 쿠키를 주문하는 소리, 친구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소리 등, 방학을 제외하고 늘 열려 있는 이곳은 교인과 학생, 학부모들의 공동 쉼터이다. 하루는 어떤 분이 가게를 찾아와 내 손을 잡고서는 “사모님에게 교훈 한 가지를 배워 간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달걀 껍질에 남아 있는 흰자를 손가락으로 긁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릇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
입력:2021-11-02 04:05:01
[역경의 열매] 트루디 (27) 학부모와 성도들 사이 고민 해결 사랑방 된 ‘파이숍’
트루디 사모가 2013년 경기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1층에 있는 ‘블루밍 파이숍’에서 교사 및 장애학생들과 함께 파이를 만들고 있다. 유치원, 학교와 함께 내가 돌보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 빵과 쿠키를 제공하는 ‘파이숍’이다. “교인들을 위한 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파이숍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에게 말했더니 옆 눈으로 나를 봤다. “갑자기 무슨 파이숍? 당신 빵 만들 줄 알아?” “아뇨. 직접 만들어야죠. 배워서.” 남편은 의아하다는 듯 내 얼굴을 물끄러미 ...
입력:2021-11-01 03: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6) 반 친구와 펼친 투명인간 작전… “나 화장실” 기적 일어나
트루디 사모가 1995년 경기도 수원 원천동에 위치한 중앙기독유치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 다니던 장애 아동 중에 특별히 잊을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바로 준원이다. 학부모가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는 날,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준원이는 어쩐 일인지 엄마를 보고도 담임선생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폐아 중에는 간혹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준원이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준원이 어머니는 “약을 먹어서 그럴 것”이라며 울먹였다. “준...
입력:2021-10-29 03: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5) 비장애·장애 아이들, 한데 어울려 더불어 사는 법 배워
트루디 사모가 1995년 수원 중앙기독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수원 중앙기독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장애·비장애 학생들을 통합 교육한다. 기독교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공평한 교육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치원을 개원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중앙기독유치원이 지역 학부모들에게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꽤 났더군요.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장애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이라면 장애 아이들을 위한 ...
입력:2021-10-28 03: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4) 기독교 교육 반발한 학부모들 “기도만 하면 수업은?”
트루디 사모가 1995년 경기도 수원 원청동 중앙기독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원 인계동에 살 당시 다른 교회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도 유치원을 세워달라”고 간청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뜻있는 교인들이 헌금을 모으고 1년 남짓 건물을 지어 마침내 1978년 중앙기독유치원을 개원했다. 교사를 뽑을 때 정한 원칙은 하나였다. ‘하나님께 교사 소명을 받은 사람인가.’ ...
입력:2021-10-27 03: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3) 교회 미화원으로 오해 “어디서 구했어, 일 잘하네”
트루디 사모가 2000년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 왼손에 청소 바구니를 들고 청소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아니 사모님, 세계적인 목사님 사모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 저는 높은 사모님이 이런 일 하시는 거 처음 봤어요. 어머나 세상에.” 교회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내 모습을 본 성도들의 반응이다. 어릴 때부터 집 안 청소하는 습관 때문에 딱히 의식하진 못했지만, 성도들 눈에는 특별하게 보인 모양이다. 칭찬을 듣자고 하는 일이 아닌데도 성도들이 내 앞에서 감탄하면 도리어 민망해질 때가 많다. 한번은 교회에서 한 자매...
입력:2021-10-26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2) “사모님, 100만원만”… 돈 빌려 간 뒤 만나면 피하기만
1998년 트루디 사모가 50번째 생일을 맞아 수원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마련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남편이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에 당선된 뒤 유명해지자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도 남편과 나의 숙제였다. 사모인 나는 그런 부탁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번은 병원 청소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분이 나를 찾아와 “돈을 갚지 못해 딸이 섬으로 팔려 가게 생겼다”며 하소연...
입력:2021-10-25 03: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1) 세계 침례교 총회장 된 남편 “어려운 일에 쓰임 받고 싶다”
트루디(왼쪽) 사모가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전 세계 침례교 대표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가 열렸다. 이날 남편은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침례교 총회장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1억 5000명이 넘는 세계 침례교인을 대표하는 한국인 목사라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나 또한 가족들과 함께 남편의 취임을 보기 위해 동행했다. 남편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걸 꺼려 하는 사람...
입력:2021-10-22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0) 딸 걱정에 늘 염려하시던 어머니 “사위 덕분에 호강”
트루디(중앙) 사모가 20대 시절 미국 미시간주의 자택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머님이 많이 위독하세요. 아무래도 미국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1983년 2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미국으로 갔다. 그때 어머니 나이는 82세였다. 당뇨를 앓고 계신 터라 곧 천국에 가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축복해드렸다. ‘엄마, 제가 한국에서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 있었다는 걸 아실 거라 믿어요.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우셨으니 천국에 가시면 ...
입력:2021-10-21 03: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9) 혼혈아 아픔 극복한 요셉 ‘축복의 도구’로 쓰임 받다
트루디 사모의 첫째 아들 김요셉 목사가 1997년 6월 15일 미국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협의회에서 주최한 전도대회에서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남편은 요셉을 엄하게 다루면서도 큰 집회에는 꼭 데리고 다녔다. 혼혈아인 아들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남편은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마지막 날에도 요셉을 서울 여의도광장에 데리고 갔다. 요셉은 아버지가 수많은 군중 앞에서 통역하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부에서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아버지와 고급 호텔로 가면서 몹시 즐거워했다. 아버지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
입력:2021-10-20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18) 혼혈아에 대한 편견에… 열 살 아들 “사는 게 힘들다”
트루디 사모의 첫째 아들 김요셉(왼쪽), 막내 요한 군과 둘째 딸 애설 양이 어린 시절 소파에 앉아 기도 손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이 덜하지만, 예전에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무척 심했다. 2남 1녀 세 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다른 한국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지만 아이들 나름대로는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비교적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첫째 요셉은 늘 외국인 엄마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다정한 어머니로 믿...
입력:2021-10-19 03: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7) “왜 내게 돈 안 줘요” 물음에 “미국 도망갈까 봐” 농담
트루디(아랫줄 왼쪽 첫 번째) 사모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선교 초기에 남편의 수입은 미국 기독봉사회에서 보내주는 선교비에서 약간의 급여를 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 총액은 줄지 않았지만 한국 화폐 가치가 높아져 원화로 환산할 때 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남편은 1966년에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지만 사례비는 80년대부터 받기 시작했다. 극동방송 사장으로도 일하고 있지만 남편은 월급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여보 나 생활비 좀 줘요.” 나...
입력:2021-10-18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16) 강의 시간을 전도 기회로 삼고 말씀 묵상 시간 가져
트루디 사모가 1980년쯤 한 대학교의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 나는 1962년 한국말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수원여자중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공부했다. 그때 내 나이는 24세였는데 나 말고도 만학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생활은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10여년 차이 나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국어 실력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 시간을 전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간 50분을 전후해 말씀 묵상을 ...
입력:2021-10-15 03: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15) 유명세 타고 언론 집중조명… 궁리 끝에 공군병원 입원
김장환(왼쪽) 목사가 197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 집회에서 설교를 통역하고 있다. 이날 전도 집회에 110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남편은 언론에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사 사장이기 때문에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데 익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미국과 국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건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통역을 맡고부터였다. 그전에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설교를 하고 YFC 국제회의도 참석했지만 빌리 목사의 여의도 전도대회 광경이 미국 ...
입력:2021-10-14 03: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4) 울타리 없는 서양식 집… 부자로 착각 거지·도둑 줄이어
트루디(왼쪽 첫 번째) 사모가 1961년쯤 첫째 아들 김요셉군을 안고 남편 김장환(왼쪽 두 번째) 목사, 지인들과 함께 수원 인계동의 집 문 앞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다. 트루디와 빌리라고 적힌 대문 문패도 세워져있다. 처음 집을 지을 때 남편은 돈을 아끼기 위해 울타리를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거지가 찾아올 때도 많았다. 농촌마을에 서양식 집이 떡하니 자리했으니 부잣집인 줄 알고 구걸하러 온 것이다. 어떨 때는 하루에 10명 넘게 온 적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돈보다 쌀을 주면서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줬다. “하나님 귀한 형제가 가난을 벗게 해...
입력:2021-10-13 03:05:08
[역경의 열매] 트루디 (13) “인부 구해주세요” 밤마다 기도… 모범수들 건축 도와
김장환(오른쪽) 목사가 1961년쯤 수원 인계동에 새롭게 지은 집 앞에서 첫째 아들 요셉군을 안고 지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봄이 되면서 남편은 우리 부부가 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초가집은 14명의 대식구가 살기엔 너무 좁았고 무엇보다 선교를 하기 위해선 조금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남편은 미국에서 올 때 친구들이 모아준 500달러로 땅을 보러 다녔다. 지금이야 500달러는 큰돈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남편은 시댁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인계동에 땅 1200평을 샀다. 현장을 둘러보니 주변에 집이 단 한 채도 없었다. 지금은 ...
입력:2021-10-12 03:10: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12) 한국 음식 적응 못해 “어머님, 고추장 맵고 김치 시어요”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오른쪽) 목사가 1960년쯤 수원에서 어머니 박옥동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또 남겼네.” 시어머니는 늘 밥그릇에 밥을 가득 얹어주셨다. 반찬이 좀처럼 입에 맞지 않았던 나는 밥에 거의 손도 대지 못했다. 나를 생각해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들기름 냄새 때문에 먹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싶었지만 20여년 동안 입에 밴 식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려웠다. “어머님, 죄송한데 고추장이 맵고 김치는 너무 시어요.” 나는 집안에 있는 각종 과자를 찾아 먹었다....
입력:2021-10-11 03: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1) “국수에 생선이 둥둥…”하며 기겁하자 사람들 박장대소
트루디(왼쪽에서 두 번째) 사모가 1960년 2월 시댁 친인척, 지인들과 함께 방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인천에서 본가인 수원에 도착할 때쯤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초가집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우리 부부가 들어서자 모두들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고등학생 때 미국을 떠난 빌리(김장환 목사)가 미국인 부인을 데려온 것이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다. 나는 시어머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처음 입는 한복이라 그런지 저고리 매무새 등 모든 것이 어색했다. 한복을 입고 나오자 누군가 내가 배가 고플 거라고 생...
입력:2021-10-08 03: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0) 날 껴안은 시어머니 “예쁘게도 생겼네, 꼭 한국 사람처럼”
트루디 사모가 1959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든 크리크 화물선을 타고 한국 인천항으로 오는 배 안에서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채 사진을 찍었다. 1959년 11월 우리 부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메이든 크리크라는 화물선을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어릴 때 호숫가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놀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배를 탄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망망대해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배를 타고 오는 17일 동안 남편과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갑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크루즈 신혼여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
입력:2021-10-07 03: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9) 남편의 한국행 결심에 “주님 뜻 이룰 수 있게…” 기도
트루디(오른쪽) 사모와 김장환 목사가 1958년 8월 8일 결혼을 기념하며 찍은 웨딩 스냅사진. 결혼한 뒤에도 우리 부부는 무척 바쁘게 생활했다. 남편 빌리(김장환 목사)는 주말마다 설교를 했다. 많진 않았지만 사례비로 월세와 식료품비, 대학원 학비 등을 낼 수 있었다. 남은 돈은 꼬박꼬박 저축했다. 허니문은 꿈같은 말이었다. 주변에선 “신혼을 좀 더 즐기라”고 말했지만 나는 불만은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빌리가 늘 다정다감하게 대해줘 행복했기 때문이다. 주의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는 사모의 행복을 그때부터 조금씩 알게 된 ...
입력:2021-10-06 03: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8) 어머니, “가난한 한국에 시집 못 보내” 극구 반대
트루디(왼쪽) 사모와 김장환 목사가 1958년 8월 8일 미시간주 그린빌 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빌리(김장환 목사)와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일주일 만인 1958년 8월 8일 저녁 8시, 미시간주 그린빌 감리교회에서 결혼했다. 결혼식 당일 한국에서는 아무도 오지 못했다. 칼 파워스 상사가 빌리의 들러리 역할을 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시댁 식구 누구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고 결혼한 셈이다. 빌리는 나와 결혼을 결심한 뒤 한국에 ‘미국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편지를 써서 결혼을 알렸다. 개인 전화도 없고 한국에 다녀올 여건도 못되...
입력:2021-10-05 03: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7) 4개월 만에 화해… “다신 헤어지지 말자” 약속
김장환(왼쪽 첫 번째) 목사가 밥 존스 대학교 재학 시절 축구부 주장으로 활동하던 모습. 내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빌리(김장환 목사)를 보면서 나는 큰 오해가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그 순간에는 이런저런 얘기를 해봐야 변명밖엔 안 될 것 같았다. 조용히 빌리의 반지를 돌려줬다. 빌리가 감정적으로 동요된 상태이고 나중에 화가 풀릴 것이라 생각해 일단 위기 상황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빌리는 나와 만나지 않기로 이미 결심한 것 같았다. 방학이 되고 내가 미시...
입력:2021-10-04 03:10:01
[역경의 열매] 트루디 (6) 나의 청혼에 “대학부터 졸업하라”… 증표로 반지 교환
밥 존스 대학교 재학 중 교제하던 시절의 트루디(오른쪽) 사모와 김장환 목사.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빌리(김장환 목사)가 대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우리는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빌리에게 “결혼하자”고 제의했다. “난 대학 졸업 안한 여자와 결혼 안 해.”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빌리는 내 말을 단칼에 잘랐다. 그러면서 “나와 결혼하고 싶으면 대학을 졸업하라”고 말했다. 빌리가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꺼...
입력:2021-10-01 0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