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석 (7) ‘디지털TV의 아버지’ 백우현 박사와 TV 사업 선도

박종석(TV 왼쪽) 엔젤식스 대표가 1997년 10월 LG전자 가전연구소에서 디지털TV 개발에 참여한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박 대표가 81년 입사한 금성사는 95년 LG전자로 사명을 바꿨다.


어머니는 나에게 ‘믿음의 우산’ 같은 분이었다. 나의 신앙도 믿음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받았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컸지만 여전히 영적인 우산으로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계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주일이면 온 가족과 함께 교회에 출석했다. 미국 유학 시절 때 한국 가면 어머니와 교회에 가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사실 1958년생인 나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LG전자 일원으로 살았다. 깨달음이 있는 재미를 찾기까지 인생 여정을 설명하려면 LG전자 때 경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LG전자에서 나의 전문 분야는 TV였다.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에서 나의 석사논문 주제도 디지털TV였다. 과학원을 다니던 80년대 초반 디지털은 먼 세상 이야기였다. 특히 사람들에게 가장 친밀한 전자기기인 가정용TV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다는 건 더 어려웠다. 디지털TV는 디지털 신호를 이용해 동영상과 소리를 방송, 수신하는 시스템이다. 아날로그TV보다 화질과 음성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영상 데이터를 디지털로 압축해 국가 자원인 주파수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쉽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이었다. 상업화하기엔 기술적 한계가 많았다. 우선 핵심 기술인 반도체부터 복잡한 영상 데이터를 처리할 만한 수준이 못 됐다.

86년부터 시작된 미국 유학시절엔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잠시 디지털TV를 잊고 살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끝낸 91년 우연한 기회에 디지털TV를 마주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논문 한 편을 발견했다. 완전디지털(Full Digital) 기술을 활용한 고해상도TV(HDTV)를 세계 최초로 제안한 논문이었다. 그동안 일본과 유럽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한 아날로그HDTV를 첨단 디지털 기술로 무력화시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백우현 박사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금성사(현 LG전자) 가전연구소에서 HDTV를 담당했다. 당시 한국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섞은 HDTV 개발에 집중했다.

그런데 백 박사가 제안한 완전디지털 방식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도 HDTV연구를 미국처럼 완전디지털 방식으로 바꿨다. 전 세계 TV 시장을 석권한 일본은 도쿄올림픽 이후 1960년대부터 아날로그 방식의 HDTV 기술 개발에 나섰다. 일본 기업과 방송사들은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 연구한 터라 완전디지털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국이 고해상도의 디지털TV분야에서 일본을 앞서가기 시작한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회사도 디지털TV의 미래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98년 LG전자는 삼고초려 끝에 세계적인 디지털TV 권위자를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영입했다. 바로 미국 유학시절 대학 도서관에서 논문으로 만난 백 박사였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고 우연은 없다’는 개인적 신념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USA투데이는 97년 11월 17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백 박사를 ‘디지털TV의 아버지’라 칭했다. 이후 나는 사부인 백 박사의 지도를 받으며 LG전자 디지털TV 사업을 이끌어갔다. 한국 언론은 나를 ‘디지털TV의 아들’이라 했다.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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