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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두상달 (10) 계획 없던 ‘엑스플로74’ 서울 개최 깜짝 발표에…
두상달(왼쪽 네 번째) 장로가 197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엑스플로72’ 대회에 참석해 외국 참가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2년 미국 댈러스에서 ‘엑스플로72’ 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도훈련 집회였다. 56명의 한국대표단도 참석했다. 나도 나사렛 형제들 10여명과 함께 했다. 전 세계 CCC가 2년 동안 준비한 엄청난 규모의 집회였다. 미국은 대단한 선진국으로 별천지였다. 미식축구가 열리는 댈러스 코튼볼 운동장에 8만명이 모였다. 숙소도 번듯한 호텔이었고 뷔페에서 음식도 마음껏 먹...
입력:2021-08-23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9) 한국 CCC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한 민족복음화운동
두상달 장로가 지난 16일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민족 복음화의 환상과 기도’라는 제목의 김준곤 목사의 기도문을 앞에 두고 CCC 운동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71년 정동에 한국CCC 회관 건물이 마련된 뒤 민족 복음화 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외부 골조만 세워진 미완공 상태일 때부터 전국에서 핵심 요원이 1000명 단위로 참여해 전도 요원 훈련을 했다. 나사렛 형제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 매년 여름에는 전국대회를 열었고 겨울에는 원단 금식기도회를 진행했다. 이 기도회는 매년 12월 31일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입력:2021-08-20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8) 평신도 정성 모아 ‘복음화 센터’ CCC회관 세워
1971년 완공된 서울 중구 정동의 CCC회관 전경. ‘월간 CCC’ 표지로도 수 차례 사용됐다. 한국이 20세기 최대의 영적 부흥을 이룩한 데는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분들이 지금도 계신 게 감사할 뿐이다. 순수하게 기도와 전도로 민족 복음화의 불씨로 살아온 수많은 평신도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한국CCC 운동에도 평신도들의 헌신이 녹아 있다. “오늘의 학원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 복음화”라는 구호 아래 한국CCC는 1958년 시작됐다. 학생 운동은 돈이 투입되는 곳이지 나오는 곳이 아니다. 결국 경제...
입력:2021-08-19 03:05:05
[역경의 열매] 두상달 (7) 집사 신분에 술 접대 늘 마음에 걸려 “술 대신 초콜릿…”
두상달(오른쪽) 장로와 아내 김영숙 권사가 1970년대말 독일에서 바이어 가족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를 위해 지금이나 그때나 술자리 접대가 따라다닌다. 외국 바이어들도 한국에 오면 당연히 그런 접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그런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체질적으로 술이 약했다. 회사에서 영업과장을 하던 시절 이야기다. 경찰복 납품 때문에 내무부 담당 과장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술고래였다.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을 돌리기 시작했다. 잘 보여야 하는 자리여서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회사 ...
입력:2021-08-18 03:05:04
[역경의 열매] 두상달 (6) 위기가 기회 된 모험과 도전… 종합상사로 급성장
두상달 장로가 1983년 사업차 쿠웨이트를 방문해 아내 김영숙(가운데) 권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꿈 많은 대학 신입생 시절,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을 때 염리동 자취방에서 룸메이트가 자주 암송하던 영어 구절이 있었다. “더 로드 이즈 마이 쉐퍼드, 아이 쉘 낫 원트(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내용도 모르고 친구 따라 외우게 됐고 그때부터 늘 입가를 맴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두고 눈을 감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손을 꼭 잡고서 “상달아 집을 ...
입력:2021-08-17 03:10:02
[역경의 열매] 두상달 (5) 고연전 축구 중계에 정신 팔려 아내와 첫 데이트 폭망
두상달 장로와 김영숙 권사가 1969년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결혼식 후 친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앞줄 왼쪽 세 번째와 맨 뒷줄 왼쪽 네 번째가 각각 홍정길, 하용조 목사. 첫 회사는 충무로 한일빌딩 10층에 있었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던 중 CCC 간사로 활동하던 친구 강용원이 “같은 건물 2층에 근무하는 김영숙씨 만나 볼래? 둘 다 CCC 회원이라 잘 통할 것 같다”며 데이트를 권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안면이 있는 회원이었다. 미래의 아내가 될 김영숙은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로 영진약품에 다니고 있었다. 여러모로 인연이 겹...
입력:2021-08-16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4) 눈앞 수입보다 사회생활 선택… 도전은 축복의 여정
두상달 장로가 1970년대 초 칠성산업을 시작한 직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1960년대를 관통하는 단어는 가난이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61년 5·16 직후 혁명 구호 1호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였을 정도였다. 명문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질 않았다. 당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모두 입학시험을 봐야 했다. 대학생 과외교사가 인기 있었던 이유였다. 대학 입학 직후 한 지인의 소개로 종로에 살던 한 아이를 만난 게 과외교사의 ...
입력:2021-08-13 03:10:02
[역경의 열매] 두상달 (3) 뜨거운 복음 메시지에 매료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CCC를 설립한 김준곤 목사가 1960년대 대학생 회원들 앞에서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대학 2학년 때로 기억한다. 한 친구가 강의실에 들어가던 날 붙잡았다. “상달아. CCC라는 데가 있거든.” “뭐 하는 데야?” “무슨 선교회인데.” “나 교회 안 다닌다.” “거기에 여학생들이 많단다. 가보자.” 청춘에게 무슨 설명이 더 필요했겠는가. 여학생들이 많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경계가 무너졌다. 그날부터 여자친구를 사귀겠다는 일념만으로 명동 거리 한구석에 있던 CCC, 한국대학...
입력:2021-08-12 03:05:03
[역경의 열매] 두상달 (2) “잘 썼다” 선생님 칭찬에 멀리하던 공부 재미 붙여
학업 성취도와 태도 모두 ‘불양(불량)’하다고 적혀 있는 두상달 장로의 초등학교 성적표. 오른쪽은 공부에 취미를 붙였던 중학교 때 성적표로 전 과목이 ‘수’다. 사랑만 받으며 살던 막내였다. 하지만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두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놀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켜 사달이 났다. 형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나를 혼냈다. 그때 어머니가 “한 놈은 공부 안 해도 괜찮다. 상달이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고 하시며 내 편을 들어 주셨다. 천군만마까...
입력:2021-08-11 03:05:04
[역경의 열매] 두상달 (1) 어머니께 받은 사랑이 ‘복음의 멀티플레이어’ 원동력
두상달 서울 반포교회 원로장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가정문화원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39년 전북 김제 광활면에서 태어났다. 고향 마을은 벽촌 중에서도 벽촌으로 바다를 막아 만든 거친 땅이었다. 지금도 서쪽으로 18㎞쯤 가면 새만금방조제가 나온다. 광활면 일대가 원래 모두 바다였던 셈이다. 일제강점기, 변두리 어촌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미 다섯 남매를 둔 어머니 문주복 여사는 무려 44세에 날 가지셨다. 지금도 40대 중반이면 노산이라 하는데 그때는 말해 뭣하랴. 평균 수명이 40...
입력:2021-08-10 03:05:03
[역경의 열매] 유동부 (15·끝) 내 사명은 ‘건강한 빵’ 만들겠다는 첫 본질 지키는 것
유동부(왼쪽) 대표가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에 있는 유동부치아바타 매장 앞에서 회사 생산팀장이자 아들인 태정씨와 함께했다. 이들 옆으로 회사의 사명인 ‘아들을 위한 빵,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빵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 3월 영화 ‘가나의 혼인 잔치:언약’을 보고 교회 공동체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한 재림 신앙이 선포된 후, 내 신앙은 완전히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됐다. 성경에 기록된 갈릴리 지역 가나의 결혼 풍습을 예수님의 재림에 비유한 영화를 보며 내 마음의 초점을 다시금 예수님께로 맞추게 됐다. 하...
입력:2021-08-09 03:10: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14) 장모님 눈높이에 맞춰 구원·복음 전하자 “아멘 아멘”
유동부 대표가 가족들과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유 대표의 딸, 며느리, 유 대표, 아내, 아들, 모친. 춘천한마음교회를 다니며 부활 신앙관을 제대로 정립한 2014년 즈음. 여든이 넘으셔서 중풍으로 한쪽이 마비가 온 장모님 생각이 났다. 그동안 일한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한 번 찾아가 뵙고 올바른 구원과 복음을 전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장모님을 찾아뵌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나도 모르게 복음을 장모님 눈높이에 맞춰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드리면 훨씬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
입력:2021-08-06 03:05:03
[역경의 열매] 유동부 (13) “여러분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직원들에 진심 전해
유동부(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대표가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에 있는 유동부치아바타 매장 건물 뒤에서 직원들과 단합의 의미로 주먹을 쥐고 사진을 찍고 있다. 유동부치아바타의 매출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난 특별히 내가 매출 상승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신 기술로 가족 같은 소중한 분들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빵을 제공하겠다는 첫 마음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을 뿐이다. 난 빵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를 선택할 때도 6개월 이상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전문가들에게 보내서 원재료, 화학기호 등까지 다 ...
입력:2021-08-05 03:10: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12) 카페 한쪽서 만든 ‘건강한 빵’ 날개 돋친 듯 팔려
유동부 대표 가족사진. 아들인 태정씨가 해병대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 잠시 휴가 나왔을 때 찍었다. 이때만 해도 유 대표는 아들 태정이에게 암이 발생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김성로 춘천한마음교회 목사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너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쁘게 해 주고 싶다고. 이렇게 쫄딱 망해 거지처럼 폐인이 된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고.’ 하지만 점점 곱씹어볼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말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 목사님의 그 말은 시간이 흘러 현재 유동...
입력:2021-08-04 03:10:01
[역경의 열매] 유동부 (11) 언제나 주님 사랑으로 품어준 목사님과 교회공동체
유동부 대표와 그의 아들 태정씨가 강원도 춘천시의 유동부치아바타 매장에 적힌 ‘부활’ 문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태정씨는 현재 유동부치아바타에서 생산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업의 실패 등 부침을 겪으며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과 교회 공동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힘을 주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날 품어줬다. 2004년 제과점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도 교회 공동체는 내 어려움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상한 마음을 안고 참석한 어느 예배 시간이었다. 김 목사님은 설교 중에 “유동부 ...
입력:2021-08-03 03:05: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10) “영혼이라도 팔아 월세·전기세·인건비 해결된다면…”
유동부 대표가 2014년 다시 일어서기 위한 사업을 구상했던 한 교회 지인이 운영하는 춘천교대 내 카페 전경.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명확히 가슴에 새기며 신앙은 한층 더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실제 삶은 녹록지 않았다. 2008년 6월 즈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서 조그맣게 조각 케이크 제조업을 시작했다. 6번째 도전이었다. 당시 아내는 꽁꽁 언 케이크를 무리하게 자르느라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갔고 그로 인해 지금도 무거운 물건을 들 때면 손목이 아플 만큼 고생을 하고 있다. 6번이 넘는 사업 실패의 과정을 겪으며 지긋지긋하게 월세, 인건비, 관...
입력:2021-08-02 03:05: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9) 결정적 증거 ‘예수 부활’로 확실한 믿음의 눈 열려
유동부 대표가 찾은 한 중학교 교과서 사회과 부도 속 ‘세계 연대표’에 BC 4년 ‘크리스트 탄생’이라고 적힌 모습(동그라미 안). 아래는 한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속 ‘크리스트교의 성립과 전파’란 단원을 유 대표가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흔적. 중고 서점에서 중학교 교과서 사회과 부도를 구입해 펼쳐봤다. 책 속 ‘세계 연대표’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던 BC4년 ‘유럽에서 크리스트(예수) 탄생’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난 한 번도 자문해 본 적 없이, 무의식중에 예수...
입력:2021-07-30 03:05:03
[역경의 열매] 유동부 (8) ‘예수 부활’이 유일한 증거? 이유 궁금해 미칠 것 같아
유동부(왼쪽) 대표가 지난해 10월 그의 영적 스승인 김성로 춘천한마음교회 목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 2001년 경기도 성남에서 우유 대리점 사업을 할 때다. 내가 부활의 증인이 된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나는 춘천한마음교회 청년,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수련회에 참석했다. 수련회 주제 말씀은 요한복음 2장 22절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였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수련회 주제는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목사님은 “예...
입력:2021-07-29 03:10: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7) 연이은 사업 실패로 ‘투잡’ 뛰며 피나는 고통의 삶
유동표 대표가 1995년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책 대여점을 할 당시 아내와 아들 모습. 유 대표는 당시 아내가 자신의 사업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1993년 6월 경기도 광명시에서 첫 사업으로 제과점을 시작했으나, 경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이듬해 3월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거목상회’란 이름으로 작은 슈퍼마켓도 열어봤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95년 7월 즈음 인근 구로동에서 세 번째로 시작한 책 대여점 사업과 경기도 성남시로 자리를 옮겨 문을 연 우유 대리점 사업까지…. 실패의 연속이었다. 사업을 ...
입력:2021-07-28 03:05:04
[역경의 열매] 유동부 (6) 첫 사업과 결혼, 모든 게 잘 풀리나 싶더니…
유동부 대표가 1996년 경기도 성남시의 한 우유 대리점에서 우유 배달을 할 당시 목장 견학을 갔다가 첫째 아들,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성로 목사님께 양육을 받으며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을 얻었다. 당시 목사님 메시지는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빛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였다. 마치 그의 눈에선 불이 나오는 듯해 뜨거웠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빛의 세계로 바꿔 버릴듯한 그 힘은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목사님 스스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지만, 난생 처음 접하는 불같은 성령의 능력 앞에 우리 모두 굴복됐...
입력:2021-07-27 03:10:02
[역경의 열매] 유동부 (5) 암흑 같은 시절 안식처 돼 준 교회서 하나님 만나
유동부 대표가 1990년 초 당시 출석했던 서울 구로구 동천장로교회 청년회 모임에 참석한 모습.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유 대표다. 철공소에서 생활하던 때나 빵 제조 기술을 어깨너머 조금이라도 배우려 기웃하던 당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암흑 같은 시절이었다. 상식과 예절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를 배우고 사람의 기본이 되는 인격을 올바로 형성해야 할 시기였음에도 난 그저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고밖에는 표현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날 안타깝게 여기셨는지 1988년 열아홉 살이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만나주셨다. ...
입력:2021-07-26 03:05:04
[역경의 열매] 유동부 (4) 내 인생 송두리째 바꾸게 될 제과·제빵과의 첫 만남
유동부 대표가 지난 6월 18일 강원도 춘천의 사업장에서 치아바타 빵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설명하고 있다. 빵 제조 기술을 배우려 새벽같이 일어났던 그의 숱한 노력과 기도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춘천=신석현 인턴기자 공장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나고 2년제의 비인가 야간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그저 졸업장이라도 따는 것이 목표였을 뿐 공부엔 관심이 없었다. 출석 도장만 찍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1987년 열여덟 살이 된 난 이제 어느 정도 첫 직장에서의 일도 손에 익었겠다, 소자본으로라도 나만의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
입력:2021-07-23 03:05:03
[역경의 열매] 유동부 (3) 칠·용접 등 닥치는 대로 기술 배우며 홀로서기 시작
1989년 즈음 스무 살이던 유동부(맨 오른쪽) 대표가 춘천한마음교회 청년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친구들은 대학 신입생이었지만, 유 대표는 빵집에서 일할 때였다. 1985년 즈음 열여섯의 나이로 서울에 홀로 올라왔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당시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로 모여든 이들이 전봇대마다 부착된 구인광고를 보고 취직하던 일이 자연스러울 때였다. 나도 서울로 일단 올라가기만 하면 먹고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삼촌이 살던 구로구 가리봉동에 거처를 잡았다.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며 이따금 인근 구로공단에 나가 일할 만한 곳을 찾았다. 마...
입력:2021-07-22 03:05:04
[역경의 열매] 유동부 (2) 열여섯 어린 나이에 가정 폭력 피해 홀로 서울행
유동부 대표가 2003년 7월 강원도 춘천의 한 호텔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인 박순정씨와 아들 태정, 딸 은진씨. 태정씨는 현재 유동부치아바타 제품개발생산팀장을 맡고 있다. 난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삼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이다. 아버지께선 별다른 직장 없이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하셨던 거로 기억한다. 술도 술이지만, 방랑벽이 심하셨던 듯하다. 아버지는 집엔 자주 안 들어오셨지만, 이따금 집에 오시면 툭하면 어머니는 물론이고, 우리 삼 형제를 때리곤 하셨다. 그 ...
입력:2021-07-21 03:05:04
[역경의 열매] 유동부 (1) “암 투병 아들이 먹어도 될 건강한 빵 만들자”
유동부 대표가 지난 6월 18일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의 사업장에서 치아바타 빵 제조 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춘천=신석현 인턴기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스물다섯 살부터 제과점, 슈퍼마켓, 책 대여점, 우유 대리점, 2번째 제과점, 식품제조업, 제과점 카페까지 연속으로 7번 사업에 실패하다 보니, 돈 문제만 깔끔하게 해결된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2014년 3월, 마지막 사업이 무너지던 때 군 생활 8개월째 되던 아들은 흉선암을 선고받고 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내와는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고, 오갈 곳이 없었던 나...
입력:2021-07-20 03: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