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션라이프  >  기독역사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민주국가 희망
1919년 당시 세계의 억압 받는 나라들을 표시한 지도로 짙은 색일수록 억압 정도가 높으며 당시 한국은 가장 억압받는 나라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순 한글로 바꿔 신한민보(1919.6.10)에 게재한 내용. 신을 하나님, 혹은 하느님으로 번역하고 있다. 1882년 조미조약을 맺을 때 조선에 소개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종교적으로는 기독교를 믿는 국가였다. 미국은 성경에 나타난 참된 기독교를 세우려고 했던 청교도와 민주국가를 세우려는 시민 세력이 세운 나라다. 북미 대륙에 성서적 기독교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워 온 ...
입력:2022-05-12 03:10:01
방주가 묻혀 있다는 산 아라라트… 곳곳에 탐사 유적지
터키 아리주 도우바야지트시 노아스빌리지 내 모형 ‘노아의 방주’ 뒤로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임보혁 기자   8일(현지시간) 아라라트산 2200m 지점에 있는 제단 같은 오각형 돌담. 임보혁 기자   홍콩 노아방주선교회 탐사대가 2010년 아라라트산에서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며 공개한 영상으로 탐사대가 방주 속에 있던 병아리콩 화석을 채집하고 있다. 영상 캡처 해발 5137m의 터키 동부 아리주 아라라트산 주변엔 4300여년 전,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 도착한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진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사람의 ...
입력:2022-05-11 16:08:49
“방주가 머물렀던 아나톨리아는 모든 인류의 고향”
‘제1회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지난 6일(현지시간) 터키 아리주 도우바야지트시 노아스빌리지에서 행사를 마친 뒤 아라라트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스러운 땅’이란 의미를 지닌 터키 아라라트산이 만년설로 덮여 있다. 사진작가 알리 이산 오즈투르크 제공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김승학(왼쪽) 장로와 윤사무엘 겟세마네 신학교 총장의 심포지엄 강연 모습.   김승학 장로가 ‘붉은 암송아지’라고 주장하는 고대 암각화. 지난 2월 사우디 라오즈산 ...
입력:2022-05-09 03:05:04
고종·명성황후, 기독교 중심의 새로운 나라 그려
철종의 사위이며 갑신정변 주역의 한 사람으로 갑오개혁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박영효.   미국인으로서 청일전쟁 당시 조선 군사 교관이었던 윌리엄 M 다이 장군.   언더우드 선교사의 부인으로 명성황후의 시의였던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캐나다 선교사이자 세브란스병원의 창립자로 한국 근대의학에 크게 이바지한 올리버 에비슨.   미국 감리교 감독으로 1895년 1월 조선을 방문해 고종과 박영효를 만난 윌리엄 닌데. 1894년 청일전쟁은 동북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일본...
입력:2022-05-05 03:05:02
중국, 미국에 “조선의 공동보호국 되자” 제안
인천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 입구 인근에 설치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 표지석. 인천시 제공   조미수호통상조약 원본과 소위 ‘감국 대신’으로 조선을 통치한 중국의 위안스카이 모습.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나라는 중국이었다. 조미조약을 작성하는데 가장 큰 노력을 한 사람은 중국의 북양대신 이홍장이었다. 그는 미국의 슈펠트를 중국으로 초청해 자신의 담당 지역인 톈진에서 조미조약을 작성했다. 슈펠트는 이 조약을 인천으로 갖고 와 1882년 5월 22일 조선과 조약을 맺었다. 그러면 왜 ...
입력:2022-04-28 03:05:03
‘야소교는 정치에 관여 않는다’… 고종 마음 움직여
일본 주재 청나라공사관 참사관 황준헌(사진)이 1880년 저술한 외교 방략서 ‘조선책략’.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1883년 미국은 루셔스 하우드 푸트를 특명전권공사로 임명하고 조약을 마무리하도록 조선으로 파견했다. 조선은 천자 제후 대부 사 서의 중화질서 아래 살던 유교 국가였다. 여기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은 조선 사회 자체를 흔드는 것이었다. 조선은 천주교가 가진 위험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여러 차례 박해를 통해 천주교를 막고자 했다. 1866년 병인박해에서 8000...
입력:2022-04-21 03:10:01
젊은이 모여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다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대회 마지막 날, 미국 독립기념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미국 건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앉았던 자리에 앉은 당시 이승만 대표. 오른쪽 사진은 당시 한인대회에 참석했던 대표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박명수 교수 제공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한 미국이 승리하자 미주 한인들은 이승만을 비롯한 몇 사람의 대표를 선출해 국제사회에 우리의 독립을 호소할 것을 결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유학생들은 1919년 2·8독립선언을 했고, 상하이 한인...
입력:2022-04-14 03:10:02
‘신문물 최초’가 많은 인천엔 한국 선교 향한 초심이 숨 쉰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 7월 인천의 한 초가집을 빌려 아내와 첫 예배를 드렸다. 그 자리에 세워진 인천 내리교회의 현재 모습.   영국성공회 고요한 주교가 1891년 세운 내동성당은 국내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인천 내리교회가 2012년 재건한 웨슬리예배당의 외관.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십자가 모양으로 돼있어 '십자가 예배당'으로도 불렸다. 1883년 개항한 인천(당시 제물포)은 신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과 외국 문화의 접점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최초란 말이 들어가는 서양식 호텔, ...
입력:2022-04-11 03:05:03
조선인에게 난폭하게 굴어 불태웠다? 그 진실은…
미국 해군 수로국 셰넌도어호 페비거 함장과 와추세트호의 슈펠트 함장이 각각 조사해 1869년 제작한 평양만(위쪽)과 대동강 일대 해도. 미국 보스턴 공립도서관 노만레벤탈지도센터 제공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1834년 제작한 지도 '청구도'에 그려진 대동강 하류 일대. 박명수 교수 제공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는 1866년 9월 2일 대동강 변에서 당시 평양 군민들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타버렸다. 이때 영국인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도 순교했다. 약 한 달이 지나고 중국 지푸의 미국 영사 샌포드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은 제너...
입력:2022-04-07 03:05:04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에 온 목적은 무역·선교·평화
1866년 8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 이르러 통상을 요구하다 군민의 화공(火攻)으로 불타버린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 그림.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이자 순교자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제너럴 셔먼호를 비판하는 북한의 기념 우표.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미관계는 1866년 벌어진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 비롯된다. 영국 무역회사 메도우는 미국 국적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임차해 조선과 무역을 시도했다. 이 배에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영국인 로버...
입력:2022-03-31 03:10:02
선교사 조선에 오게 한 ‘조미수호통상조약’ 140주년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한 미국과 영국, 중국 정상. 왼쪽부터 장제스 중국 총통,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 총통 부인 쑹메이링.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미수호조약의 주역인 미국 해군 로버트 윌슨 슈펠트 제독. 박명수 교수 제공 올해는 조미수호통상조약이 맺어진 지 140주년이 되는 해다. 조미조약은 조선이 최초로 서양제국과 맺은 조약이며, 이 조약을 계기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양국가들과 국교가 성립돼 조선은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됐다. 이제 과거 중국 대륙을 중심으...
입력:2022-03-24 03:05:05
“1882년 한미수호조약, 내한 선교 길 열었다”
한규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이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연구소 책장 사이에 앉아 한국교회가 걸었던 역사의 전환점을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인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한규무(61)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신임 소장은 10일 지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연구소에서 “교회 역사를 굳이 몰라도 신앙생활 하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의외의 답이었다. 기독교 민족 운동사를 전공한 한 소장은 1997년부터 광주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소장에 선임된 그의 임기는 2년이다. 한 소장은 부연했다.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
입력:2022-02-14 03:05:03
정부 수립·교육·선교 ‘대이은 헌신’… 우리암·광복 부자 아십니까
미국 북감리회 공주선교부 설립 학교인 영명학교 후신 영명 중·고등학교 교정. 교정 흉상은 이 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황인식 조병옥 유관순(왼쪽부터)이다.   우광복(조지 윌리엄스)의 가족. 오른쪽 소녀가 공주 영명동산에 묻힌 동생 올리브이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우광복과 이승만 대통령.   영명동산에 있는 옛 선교사 주택. 한국의 독립과 교육에 헌신하고 복음을 전파한 우리암(禹利岩, Franklin E. C. Williams, 1883~1962) 우광복(禹光福, George Z. Williams, 1907~1994) 선교사 부자(父子) 기념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
입력:2021-11-12 03:10:02
박정희 정권 ‘채찍과 당근’ 이중적 개신교 정책… 개신교 지도자들 ‘선택적 딜레마’에
박정희정권의 이중적 개신교 정책으로 당시 일부 개신교 지도자가 ‘선택적 딜레마’에 빠졌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던 이들에겐 ‘회색지대’가 두텁게 생겼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이재근)가 6일 ‘5·16군사정변, 박정희정권과 기독교’를 주제로 화상회의 시스템 줌을 통해 진행한 학술 심포지엄에서다. 이중적 정책이란 박 정권을 반대하는 개신교인을 핍박하는 동시에, 정권에 우호적인 쪽에는 제도적 혜택을 준 것을 말한다. ‘5·16과 박정희정권의 종교정책’을 주제로 발표한 강인...
입력:2021-11-08 03:05:03
‘기이하고 놀라운 사람’ 게일 선교사 기획전
제임스 스카스 게일(한국명 기일·1863~1937) 선교사의 일생과 업적을 다룬 전시회(포스터)가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출신의 게일은 1888년 기독청년회(YMCA) 파송 선교사로 25세에 조선에 들어와 40년간 헌신했다. 어학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그는 한국어를 빠르게 익혀 한국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고 존 버니언의 소설 ‘천로역정’과 찬송가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성경 요한복음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고린도서를 한글로 번역했는데 ‘갓(God)’을 ‘하나님’이란 표기로 확정한 것도 그였다. 게...
입력:2021-09-23 03:10:02
130년 한국기독교 역사 한곳에… 한국교회 아우른다
이영훈(가운데)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이사장과 재단 이사진이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CBS 회의실에서 재단 이사회에 앞서 기도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제공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이사장 이영훈 목사)이 2024년 건립을 목표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에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은 한국 근현대 기독교 역사를 전시하고 관련 사료를 보존하는 공간으로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공과를 균형있게 소개하는 복합적인 역사기억공간이 될 예정이다. 나아가 기독교 관련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개발...
입력:2021-09-01 03:10:02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2024년 문 연다
이영훈(가운데)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 대표이사와 변재운(오른쪽·국민일보) 김진오(CBS) 사장이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CBS 회의실에서 체결한 양해각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재단법인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대표이사 이영훈 목사)은 국민일보(사장 변재운), CBS(사장 김진오)와 함께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에 상호 협력하기로 하고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해각서 체결식은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목동서로 CBS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세 기관은 한국기독교 관련 근현대사 기록, 기독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 ...
입력:2021-08-30 03:05:10
[한국기독역사여행] 서해 낙도에 뿌린 전도 열정… 복음으로 섬을 잇다
세계로 향한 관문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 영종중앙감리교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섬 영종도 교회는 공항 개발과 함께 상전벽해의 도시 교회가 됐다. 100여명의 원 교인들은 개발에 따른 물질의 유혹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1500여명이 모이는 예배당을 헌당했다. 아래 사진은 초기 초가 예배당과 성도들이다.   30여년 영종도에서 사역한 황규진 목사가 교회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1948년 오지섭 목사 당시 헌당된 영종중앙교회(당시 운서교회).   장봉도 교회. 오지섭 목사가 산상 부흥회를 이끌던 섬이다.   19...
입력:2021-08-27 17:1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기독 공동체 터전 세우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부안초등학교. 1910년대 일본인 마스토미 장로가 조선인 선교를 위해 오산교회를 세우고, 이어 미션스쿨 흥덕학당과 오산학교(아래 흑백사진)를 설립했다. 현 부안초교는 이 학교가 전신이다. 학교 교정에 1회 졸업생들이 심은 아카시아 한 그루(사진 왼쪽)가 보인다. 마스토미는 1995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마스토미 야스사에몽 (1880~1934)   마스토미 부부와 그의 어머니(앞줄). 뒷줄은 마스토미 지원으로 고베신학교에 유학한 조선인 3인으로 추정된다.   현 오산교회 인근 옛 오산교회 사택. 1980년...
입력:2021-08-13 17: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사면초가 고난’ 속에도 의료선교의 꽃을 피우다
인천 율목동 인천기독병원 장례식장 뒤편. 붉은 벽돌 건물 가운데 부분이 1930년대 초 미국 감리회 성도들의 선교 헌금으로 건축된 병원 일부다. 아래 사진의 맨 우측.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후 좌우로 증축했으며 관사·행정실 등으로 사용됐다. 원목 강경신 목사는 “복원을 서둘러 역사 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쟁 참화를 딛고 재건된 병원. 1956년 사진.   로제타 홀 (한국명 허을·1865~1951)   병원 내에 있던 인천기독간호대 후신 안산대학.  ...
입력:2021-07-30 17:0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숨이 끊어질 듯한 일제 고문 속 주님을 만나다
손정도 목사가 일제강점기 유배(거주제한) 생활을 했던 전남 진도군청 앞 철마광장. 1912년 손 목사 유배 당시 진도 읍성 안으로 주재소 등이 있었다. 사진의 왼쪽 건물 쪽이 손 목사 유배 터다. 멀리 보이는 교회는 진도중앙교회로 1919년 설립됐다.   손정도 목사와 도산 안창호(왼쪽) 선생. 중국 상해 임시정부 시절이다.   1915년 진도 읍성 관아와 읍성 거리 풍경. 사진 왼쪽 초가 등이 손정도 목사 ‘정배소’로 추정된다. 오른쪽 모텔 사진은 정배소 자리다.   손정도 목사는 진도 유배를 끝내고 서울 정동교회에서 목회하...
입력:2021-07-16 17:20:01
[한국기독역사여행] 선대가 심은 믿음의 씨앗, 아들·손자 거치며 거목이 되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칠산침례교회 예배당과 칠산리 마을 풍경. 금강을 끼고 있는 한적한 농촌 교회다. 근대도시 군산과 강경 사이 나루터 마을로 19세기 말 침례교 펜윅 선교사 등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고, 칠산리 향반 장씨 가문 3대가 내륙으로 복음을 날랐다. 15년 전 부임한 조용호 목사가 강경교회·공주교회(현 꿈의교회)와 함께 ‘기독교한국침례회 3대 교회’의 위상을 되찾았다. 아래 흑백 사진은 1918~1949년 무렵 두 번째 예배당.   금강권 선교 개척자 펜윅 선교사의 백마를 이용한 전도 행차 모습. 조용호 목사 제공   한국침례...
입력:2021-07-02 17:05:01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김치 항아리에 숨겨 6·25 화마 피했다
사진=옥성득 교수 제공 1961년부터 30여년간 한국 교계에서 공인본으로 널리 사용했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기초가 됐던 52년판 원고(사진)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될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원고는 인민군의 감시와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대한성서공회 측 관계자의 기지로 김치 항아리에 숨겨진 채 보존될 수 있었다. 지난해 출간된 ‘대한성서공회사 Ⅲ’에 따르면 성서공회는 1949년 11월 38년판 개역 성경전서를 당시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옛말을 현대말로, 사투리를 표준어로, 그리고 띄어쓰기 등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입력:2021-06-28 03:10:02
[한국기독역사여행] 여성이 꿈을 펼 수 있도록 교육·의료 양 날개로 새 길을 열다
서울 발산동 이화여대 서울병원 내 보구녀관(한옥). 1887년 서울 정동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으로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이 세웠다. 정동 보구녀관은 동대문으로 이전, ‘동대문 이대병원’으로 불렸다. 이화의료원은 2019년 이화여대 서울병원 개원과 함께 보구녀관을 복원, 기독교 선교병원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아래 흑백 사진은 초기 보구녀관이다.   메리 스크랜턴의 외아들 윌리엄.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들어와 의료 사역에 헌신했다.   경기도 수원 매향학교. 메리가 경...
입력:2021-06-18 16:45:01
[한국기독역사여행] 암울한 시대 태어난 ‘산토끼’ 민족 계몽의 심장을 깨우다
국민동요 ‘산토끼’ 작사·작곡자 이일래 선생 흉상. 경남 창녕군 이방초등학교 교정이다. 이일래 선생은 1920년대 말 이곳 교사로 근무하면서 나라 잃은 슬픔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산토끼’를 작곡했다.   이일래 (1903~1979)   1936년 12월 14일 크리스마스이브 성극 직후 기념사진. 문창교회로 추정.   1970년대 경기도 남양주 거주 시절 이일래 부부. 제자들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다. 여성동아 제공   1970년대 이방초교 교정. 지금은 학교 주위로 체험 및 기념 시설 ‘산토끼 ...
입력:2021-06-04 16:55:01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