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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중소설 작가… 서너 시간 행복하면 족한 이야기 쓴다”

자신의 다섯 번째 소설인 ‘불편한 편의점’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호연이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해 연말부터 6개월을 들여 ‘불편한 편의점’ 속편을 쓴 후 지방 강연을 다니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이 책은 지난해 4월 출간돼 5월 1만부를 돌파하더니 6월에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서재에서 종합 1위에 올랐다. 7월에 오프라인서점에서 베스트셀러 6~7위에 올랐고 가을에 3~4위를 하다가 연말에 모든 서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서도 새 책에 잠깐씩 1위 자리를 내줬다가 다시 1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속편인 ‘불편한 편의점 2’가 출간돼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1·2권을 합쳐 80만권 이상 팔렸다고 한다.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에 해당하는 100만부 돌파가 멀지 않아 보인다.

책이 안 팔린다고 아우성인데 이 책은 왜 이렇게 잘 팔리는 걸까.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호연(48) 작가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답했다.

“판매 통계로 보면 20~40대 여성이 주로 샀다. 보통 문학 독자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좀 다른 건 중고등학생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엄마가 산 책을 자녀들이 읽고, 자녀들이 학교 추천도서로 읽은 책을 엄마가 읽고. 아이들이 2권 나왔으니 사달라고 해서 또 팔리고. 청소년소설이 아닌데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다. 학교에서 강연 요청도 무척 많다.”

중고생까지 독자로 끌어들인 게 성공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중고생은 왜 이 책을 좋아할까. 그는 편의점이라는 소재, 그리고 가독성을 꼽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인간들의 주유소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의점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고.”

독자층을 넓힌 또 하나의 요인은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김호연은 “저는 대중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잘 읽히게 쓰는 데 중점을 둔다”면서 “편의점이라는 소재가 친숙한 데다 읽기 쉬우니까 책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것 같다. 내용도 따뜻하고. 남들에게 추천하기도 좋다. 추천 글이 블로그에 1000개, 인스타그램에 1만7000개가 넘는다. 평소 책 안 읽는 사람들을 끌어들인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을 통해 청소년 독자를 새로 발견했다. 그는 “청소년소설로 쓴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좋아해 줘 기쁘다. 이 아이들과 함께 작가로 늙어갈 걸 생각하니 행복하다”면서 “진작에 왜 청소년소설을 안 썼을까”라고 말했다.

‘불편한 편의점’은 서울 청파동의 한 편의점에 야간 알바로 채용된 노숙자가 편의점을 오가는 손님과 이웃, 직원의 사연들을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이야기다. 힐링 소설, 도시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출판 계약도 하지 않은 채 썼다. 그는 “다시 책을 낼 용기가 없었다”며 “출판사를 못 찾으면 (온라인으로 글을 발표하는 플랫폼인) 브런치에 공개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작은 문학 전문 출판사 나무옆의자가 원고를 읽고 출간을 결정했다.

김호연은 그동안 네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는데 데뷔작인 ‘망원동 브라더스’를 제외하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직전에 발표한 묵직한 미스터리 소설 ‘파우스터’(2019년)는 그가 “소설가로서 목숨을 걸고 썼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책도 대형 출판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4000부 정도 팔리는 데 그쳤다.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 틈틈이 쓴 소설, 출판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쓴 소설, 1만부만 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출간한 소설이 김호연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초판을 겨우 파는 “초판 3000부 작가”였고 10년 넘게 “연봉 1000만원 작가”로 살아왔다. “소설가로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이제야 “소설가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김호연은 2001년 시나리오를 쓰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써서 팔고 영화사에 고용돼 글을 썼다. 미스터리도 쓰고 액션도 쓰고 좀비물도 썼다. 시나리오로 벌이가 안 되면 대필도 하고 칼럼도 쓰고 외주 원고도 썼다. 출판사에 취직해 만화 스토리를 쓰고 소설 편집도 했다. 그는 “생계형 작가로 온갖 장르의 글을 다 쓰면서 푼돈을 벌어 살았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그의 20년 생존기는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년)라는 산문집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해외 대중소설 붐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5년 이후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같은 일본 작가의 소설이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출판사에서 일본이나 영미권 소설을 편집하면서 보니까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등 장편 대중소설이 한국 독자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 대중소설에 대한 니즈가 있구나’ ‘우리 소설가들이 그걸 채워주지 않는구나’ ‘우리 소설은 단편 중심이고 고급 독자만 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처음부터 그는 장편 대중소설을 지향했다. 그는 “나는 문학으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아니다”며 “책 한 권을 통해 서너 시간, 삼사일 정도 행복하면 족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에서 익힌 글쓰기 기술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 그는 “장편소설은 이야기가 길기 때문에 그걸 다루는 공식과 구조가 있어야 한다. 그걸 영화에서 공부했다”며 “소설이나 시나리오나 작법은 똑같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 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나 미국의 인기 작가 제임스 설터도 시나리오를 썼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셰이본도 마찬가지다. 셰이본은 ‘스파이더맨 2’ 각본에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저 이전에 천명관 선배가 시나리오 작가를 하다가 소설가가 됐고 ‘아몬드’ 작가 손원평씨도 시나리오를 쓰다가 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영화에 예술영화가 있고 상업영화가 있듯이 문학계에도 심오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고 캐주얼하고 장르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한국의 대중소설, 상업소설이 약했다. 하지만 최근 성공한 소설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다 대중소설이다. ‘불편한 편의점’도 그렇고. 그동안 문학성이 있고 고급 독자들이 읽는 수준 있는 한국 소설들이 많이 팔렸다면 이제는 대중소설이 잘된다.”

김호연의 소설들은 모두 해외 출판 계약이 됐고 영상 판권도 다 팔렸다. ‘불편한 편의점’은 아시아 7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국내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는 “장편 대중소설은 판권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 영상화하기도 쉽다”고 했다.

김호연은 ‘불편한 편의점’ 속편 출간 후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날도 지방의 한 도서관에서 강의하고 오는 길이라며 “월차를 내고 온 직장인, 아이 수업을 빼고 함께 온 부모도 있었다. 한국 독자들의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좋은 이야기를 알아봐 준다”고 말했다.

김호연의 이야기는 ‘불편한 편의점’에 나오는 희곡작가 오인경의 사연과 비슷하다. 절필을 고민하는 무명작가가 우연히 편의점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된다는 내용이다. 20년간 무명작가로 살아온 김호연은 어느 날 편의점을 낸 선배를 만나고 편의점 소설을 쓰게 된다. 어쩌면 마지막 소설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 소설이 그를 다시 소설가로 살게 했다.

김호연은 “한 권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글쓰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 권만 더 써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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