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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 담고 싶었죠”

유튜브 채널 ‘픽고’의 고낙균 대표(왼쪽)와 이민지 PD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채널의 메인 화면을 띄운 스마트폰을 든 채 손가락으로 픽고의 로고(「」)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서영희 기자


고낙균 대표와 이민지 PD가 지난달 14일 유튜브 주최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대화’ 행사에서 ‘당신의 이야기가 바로 픽고’라는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유튜브 제공


만만한 사람, 힘들 때만 연락하는 친구의 특징, 자기 말이 다 맞는 사람 특징…. 내 얘기 같기도 하고 내 친구 얘기 같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 ‘픽고’는 ‘실생활’같은 숏폼 웹드라마로 사랑받고 있다. 20~30대가 공감할 만한 대학생활, 사회초년생 이야기, 연애문제, 친구관계 등을 다룬다.

MZ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픽고의 구독자는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12월 구독자 10만명을 달성한 후 4개월 만에 36만명을 돌파했다. 1분 미만의 ‘쇼츠’ 영상은 800만 조회 수를 넘겼다. 10분 안팎의 숏폼 드라마 중에선 ‘아싸인척 하는 인싸들’(조회 수 300만회)이 가장 인기 있었다. 이 밖에 다수의 콘텐츠가 200만 조회 수를 넘어섰다.

고낙균 대표는 대학에 다니면서 2019년 콘텐츠 제작사 픽고를 창업했다. 26세 때였다. 회사 운영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으로 일단 회사부터 차렸다. 이듬해 이민지 PD를 영입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숏폼 웹드라마를 올렸다. 픽고 소속은 두 사람이 전부이고 촬영에 필요한 인력은 필요할 때 섭외한다. 출연 배우들은 프리랜서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에서 지난달 27일 고 대표와 이 PD를 만났다. 이들의 눈빛에선 생기가 느껴졌다. 인터뷰 도중 “이 이야기를 다음에 에피소드 소재로 써도 좋겠다”고 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이야깃거리를 찾는 모습에서 직업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내민 명함에는 영상을 형상화한 기호(「 」)를 본떠 만든 픽고의 로고가 있었다. 기호 사이에 공간을 조금 비워뒀는데, 이는 시청자가 채우라는 의미다. 고 대표는 “우리 콘텐츠의 완성은 댓글이다. 댓글까지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각본은 대부분 이 PD가 작성하고 고 대표와 의논해 디테일을 수정해나간다. 실제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섬세한 고증이 담긴 대사와 연출이 몰입감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 대표는 “우리 콘텐츠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유형의 사람이 담겼으면 좋겠다”며 “특별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 속 사람들이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13명의 배우는 실제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남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 남을 잘 배려하다 보니 때로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 눈치 없이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사람 등 여러 유형이 있다.

짧은 드라마 속에 청춘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것도 픽고 영상의 매력이다. ‘지금 실수해도 괜찮다.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는 삶을 배워 나간다’는 메시지가 모든 영상을 관통하며 시청자를 다독인다. 이 PD는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하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며 “다음에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게 우리 콘텐츠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13명이나 되는 드라마 캐릭터를 만들면서 두 사람은 친구들이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참고했다. ‘극한의 효율충’ 에피소드는 고 대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일 때, 진득하게 한곳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현수의 모습이 시간을 허투루 쓰기 싫어하는 그와 닮았다고 했다.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영감을 얻은 적도 있다. 픽고의 등장인물 중 타인에 의존적인 면을 가진 연희는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내용을 참고했다. 이 PD는 “부모가 사랑을 확실히 주지 않으면 아이가 불안해서 친구에게 더 의존하고 남에게 버려지지 않으려 행동한다는 것을 보고 캐릭터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시청자의 댓글을 대사에 녹인 적도 있다. 픽고 로고의 의미대로 시청자가 콘텐츠에 기여한 것이다. 이 PD는 “댓글에 ‘여자들은 남자친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일일이 답장하는 거 싫어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캐릭터 대사에 참고했다. 시청자가 작가로 참여한 케이스”라며 웃었다.

픽고의 각 캐릭터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한다. 자존감이 낮고 감정 표현에 서툴던 소현이도 어느 순간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독백을 한다. 뭘 해도 실수 연발인 스타트업 인턴이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이 되겠다”고 말하며 힘을 내는 장면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응원이 됐다.

출연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는 픽고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처음엔 4명이 출연했는데, 어느덧 배우가 13명으로 늘었다. 고 대표가 배우를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진정성이었다. 고 대표는 “시청자가 ‘이건 가짜다’고 느끼는 순간 콘텐츠의 몰입력이 떨어지니까 진실한 리액션이 가장 중요했다”고 전했다.

고 대표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택했다. 콘텐츠는 대중이 많이 볼수록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유명인사의 강연에서 “드라마는 앞으로 계속 커질 것이며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숏폼 웹드라마로 방향을 잡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영상을 찍어온 이 PD는 대학에서 미디어영상학을 전공했다. 픽고에 오기 전에는 MBC 뉴미디어국에서 PD로 일했는데, 꿈을 잊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감독이란 원래의 꿈으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이 뭘까 고민하다가 ‘지금부터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픽고에 합류한 계기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꿈을 좇는 일은 불확실하고 안전하지 않다”면서도 “결국엔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길이더라”고 입을 모았다.

픽고의 영상은 일주일에 한 편씩 업로드된다. 일주일 안에 마감하기 빠듯할 때도 많다. 가장 애를 먹은 영상은 맨 처음 올린 영상이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시나리오 작업에만 4개월이 걸렸다. 이 PD는 “처음엔 우리도 확신이 없었고 초반에는 반응도 별로 없었다”고 회상했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은 ‘이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영상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보니 실버버튼(유튜브 구독자 10만명 달성 인증마크)을 받았다. 첫 영상을 올린 그해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셈이라 의미가 더 컸다.

두 사람은 시청자들의 댓글을 거의 다 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30대 아이 엄마가 남긴 글이었다. 육아에 전념하면서 자신보다 가족을 더 챙겨온 사람이었다. 픽고 영상을 보고 난 후 그는 남편에게 “나도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 대표는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숏폼이 아닌 미드폼, 롱폼 드라마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쯤엔 지금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가족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대학생, 사회초년생에서 나아가 결혼, 육아와 관련된 청년들의 이야기도 담을 수 있다.

최근 픽고처럼 숏폼 드라마를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픽고의 두 사람은 자신감을 표했다. 고 대표는 “우리는 좋은 스토리로 승부하면서 우리만의 지식재산권(IP)을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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