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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 킬러’… “설거지하다 아이디어 떠올랐죠”

웹툰 ‘유부녀 킬러’를 만드는 검둥(왼쪽) 작가와 YOON 작가가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웹툰 ‘유부녀 킬러’의 장면들. 주인공 유보나는 회사에선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킬러로, 집에선 엄마와 아내로서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보나는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워킹맘이다. 두루미전자 영업사원 보나의 고객은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들이다. 그들을 처단하는 일을 두루미전자에선 ‘미팅’이라 칭한다. 회사에선 스나이퍼, 집에선 세살배기 율이의 엄마이자 사회부 기자 태성의 아내로 사는 보나는 인기 웹툰 ‘유부녀 킬러’의 주인공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의 한 카페에서 지난 18일 웹툰 ‘유부녀 킬러’의 글을 쓰는 YOON(36), 그림을 그리는 검둥(31) 작가를 만났다. 이번 주 마감을 막 마치고 나온 두 작가는 다음 시즌 구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음 주면 시즌2가 끝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지극히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모르고 들으면 다소 파격적인(?) 제목이 내용보다 먼저 화제를 끌었다. YOON 작가는 “6년 전 설거지를 하다가 ‘유부녀인데 정체를 숨기고 킬러 일을 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웹툰을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시에 제목이 떠올랐고 다른 제목은 생각한 적도 없다.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고 나중에 제목이 떠오르는 경우도 많은데, 두 개가 같이 왔다”고 돌이켰다.

반전을 의도한 건 아닐까. YOON 작가는 “반전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를 끌어 그 여파로 온라인에서 더 화제가 됐다”며 “‘검색어 정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검색창에 ‘유부녀 킬러’라고 검색하면 19금 콘텐츠만 나왔지만 이제 웹툰에 대한 정보들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태블릿PC에 다음 회차에 쓸 보나 캐릭터를 스케치하던 검둥 작가는 “제목을 듣자마자 ‘저 할게요’라고 했다”며 “‘어떻게 이런 제목을 만들 수 있을까’하고 놀랐다.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고 거들었다.

2020년 5월 연재를 시작한 웹툰의 누적 조회 수는 1억1000만회, 카카오웹툰 개편(2021년 8월) 이전 다음웹툰 시절에도 평점 9.9로 압도적인 독자 만족도와 인기를 얻었다.

생명을 주는 존재인 엄마의 직업이 생명을 앗아가는 킬러라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YOON 작가는 “킬러의 반대말이 엄마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특성이 같이 있는 캐릭터면 매력도가 높을 것 같았다”며 “사실 첫 번째 요소로 재미를 뒀다. 의미는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후에 오는 것이 돼야지, 처음부터 의미를 생각하고 시작하면 재미가 없어지더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보나는 직업이 킬러라는 점만 빼면 현실 속 워킹맘 그 자체다. 독자들은 시댁과 갈등,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고충 등 실제 기혼 여성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웹툰에 공감한다. 경험에서 나온 내용인지 묻자 YOON 작가는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다. 시어머니도 웹툰 속 선자 같은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고 말하며 웃었다. 보나의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결혼한 친구들의 이야기,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참고해 만들었다.

웹툰의 인기에는 그림의 흡입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 “영상이 그림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혹평받는 경우가 생기는 건 이 때문이다. 검둥 작가는 간결하고 투박한 그림체로 캐릭터 특징과 분위기를 잘 묘사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이 심플해서 분량이 많아도 잘 감당하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주변 사람들이 ‘안 그리고도 그린 척한다’ ‘최소 노동 최대 효과’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면서 “(제 그림이 인기가 많은 건 잘 그려서가 아니고) 독자들의 그림 취향이 굉장히 다양한 (덕분)”이라며 검둥 작가는 겸손을 표시했다.

보나와 주변 인물의 스타일은 그의 손에서 완성됐다.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특정 배우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검둥 작가는 “그 배우가 누구였는지는 비밀”이라면서 “보나는 기본적으로 예쁘고 차분한 캐릭터”라는 힌트만 줬다. 보나는 ‘참한 스나이퍼’라는 반전 매력을 주기 위해 슬랙스에 차분한 재킷을 걸친다. ‘훈남 기자’이면서 모범생 같고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남편 태성은 니트 안에 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늘 ‘꽉’ 맨다.

디자인하기 가장 어려웠던 캐릭터는 보나의 아들 율이다. 검둥 작가는 “YOON 작가가 ‘꽉찬 3살에 다른 애들보다 발육이 좋다’고 설명했는데 주변에 아기들이 없어 감을 잡기 어려웠다”며 “사진으로만 참고했다”고 말했다.

원고를 받고 가장 난감할 때는 언제일까. 검둥 작가는 “배경이 너무 많이 바뀔 때”라고 단박에 대답하며 YOON 작가에게 따가운 눈빛을 던졌다. 검둥 작가는 “한 회차에 주인공이 서울 갔다가 대구 갔다가 러시아 갔다가 이러면 하루종일 배경을 찾고 세팅을 한다”며 “시간 안에 마감이 어려울 것 같으면 최대한 풀샷을 피하는 식으로 머리를 쓴다. 배경이 집만 나올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보나의 시댁 식구가 많다는 설정 때문에 가족회의가 열리는 것도 난감하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김장 신이었다. 검둥 작가는 “사람도 너무 많고, 손 큰 보나의 시어머니 탓에 배추도 너무 많았다”며 “배추를 브러시(그림 하나를 그려 프로그램에 저장한 다음 도장처럼 찍을 수 있도록 하는 효과) 처리하려 했는데 막상 해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장하는 모습들을 유튜브로 찾아보면서 결국 배추를 하나하나 그렸다”고 토로했다.

두루미전자의 고객은 무거운 죄를 지었음에도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간 사람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악인’이다. YOON 작가는 “보나는 엉성한 법의 그물망을 촘촘히 꿰매는 인물이다. 사회에선 조두순 사건 같은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나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며 “시즌1 후기에 ‘처단해야 할 범죄의 소재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는 말을 썼는데, 이제 소재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경력 8년의 두 작가는 ‘유부녀 킬러’의 인기로 제법 유명세를 탔다. 검둥 작가는 “가끔 병원에 가면 무슨 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유부녀 킬러’ 작가라고 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이번 작품으로 수입이 안정돼 병원을 제때 갈 수 있게 됐다”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다음 주 시즌2가 마무리되면 두 작가는 3개월 이상 휴식기를 가질 계획이다. 시즌1과 시즌2 사이엔 쉬는 시간이 없었다. 웹툰을 처음 구상했을 땐 이렇게 연재가 길어질지 몰랐다. YOON 작가는 “많이 좋아해 주신 덕분에 이번 시즌엔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고 주변 인물도 늘었지만 구상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충분히 쉬고 재충전해 시즌3의 스토리 라인을 제대로 잡고 싶다”고 말했다. 시즌3에선 주변 인물의 이야기보단 보나의 과거, 그리고 태성과 보나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질 예정이다.

검둥 작가는 “그림을 위한 공부 차원에서라도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 요즘 나오는 차들은 기어가 전자식이라고 하던데 그것도 몰랐고, 액셀이 뭔지도 모른 채 액셀 밟는 장면을 그렸다”면서도 “쉰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다른 일거리를 주셔서 면허를 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웹툰 작가 중에는 얼굴 공개를 꺼려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두 작가 모두 사진이 실리는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를 물었다. 작가들은 “얼굴 나오면 주변에 자랑하기에 좋지 않냐”며 “신문에 얼굴이 나오면 부모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다. 효도 인터뷰”라며 깔깔 웃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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