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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괘씸죄에 걸린 유승준



죄형법정주의는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범죄와 그에 따르는 형벌은 반드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괘씸죄라는 예외가 있다. 법전에는 없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올라 있을 정도로 실체가 있다. 권력자나 윗사람의 눈 밖에 나는 처신으로 괘씸죄에 걸려 졸지에 몰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출액 규모 재계 6위였던 국제그룹이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1985년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공중분해 된 게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미국 국적 재외동포인 가수 유승준도 괘씸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해 2000년대 초반까지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입국이 금지되면서 국내 무대에서 사라졌다.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고 입영을 앞둔 2002년 1월 일정이 끝나면 바로 귀국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출국하고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니 거센 비난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병역 기피 논란 끝에 입국금지 대상에 오른 그는 그해 2월 미국 여권으로 입국하려다 거부돼 공항에서 되돌아갔고 아직까지도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유씨는 장기 체류가 가능한 재외 동포(F-4) 비자 발급이 거부되자 국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2020년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정부는 여전히 비자 발급에 부정적이다.

유씨가 주 LA 총영사를 상대로 비자를 발급해 달라고 서울행정법원에 재차 제기한 소송의 마지막 변론이 지난 17일 진행됐다. 유씨는 외국 국적을 취득해 군대에 안 간 재외동포들이 수없이 많은데 유독 자신만 20년 넘게 입국을 금지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재외동포 출입국 관련 법상 국적 상실을 이유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연령은 만 41세다. 재외동포는 한국 국적을 포기했어도 그 나이가 지나면 병역 기피 여부와 상관없이 F-4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유씨는 만 45세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살인죄도 공소시효가 있는데, 유씨에게만 시효 없는 괘씸죄를 적용하는 게 온당할까. 선고일은 다음 달 14일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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