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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배드파더스, 법은 멀고 아이는 자란다



양육비 안 주는 나쁜 부모들 신상 공개하자 밀린 돈 지급
명예보다 아이 생존권 더 중요
법 개정 의미있지만 실효성 의문
국가가 대신 양육비 지급하고 미지급자에 구상권 청구해야
개인 간 채무 관계 아닌 양육비 미지급은 범죄이자 아동학대

세상에는 나쁜 부모가 많다. 아이를 때리거나 방임하는 것만 나쁜 게 아니다.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육아를 책임지는 이에게 양육비는 아이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의당 받아야 할 몫이다. 비싼 외제차를 몰면서도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이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양육비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버틸 수가 있다. 사실상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들은 양심의 가책조차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새해에도 춥고 배고픈 겨울을 지내고 있다.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는 경제력이 있으면서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개인 웹사이트다. 나쁜 부모에 아빠만 있는 건 아니지만 90%가 아빠다. 그래서 이름이 배드파더스다. 기초수급자 등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 양육비를 이미 지급했거나 지급을 약속하기만 해도 리스트에서 삭제된다. 신상 공개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름 나이 주소뿐 아니라 얼굴 사진과 직장명까지 공개하다 보니 효과는 확실했다. 2018년 7월 이 사이트가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1000건에 가까운 양육비 미지급 사례가 해결됐다. 대형 로펌 변호사인 아버지는 신상이 공개될 거라는 얘기에 그동안 밀린 2억4000만원을 한꺼번에 주기도 했다.

사이트의 파급력이 세지면서 명예훼손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신상이 공개된 5명이 명예훼손으로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를 고소했는데 1심에선 무죄 가 선고됐다. 구씨의 활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법원은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적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옳은 결정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나쁜 부모의 초상권보다 아이들의 생존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드파더스의 운영 목적 자체가 나쁜 부모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줘서 하루빨리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난해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핵심은 3가지이다. 신상 공개, 출국금지, 운전면허정지.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게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보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법 개정으로 양육비를 1년 이내 해결하지 않으면 형사처분이 가능하게 된 점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신상 공개를 보자.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양육비 채무자 2명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올렸으나 얼굴 사진과 직장명을 공개하지 않아 신원 특정이 안 된다. 굳이 여가부 홈페이지에 가서 이 명단을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정부 차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해지면서 배드파더스는 한때 사이트를 닫았는데 이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이 사이트가 닫히자 어떤 이는 억지로 내오던 양육비 지급을 슬그머니 중단해버렸다.

출국금지는 한 번에 6개월, 운전면허 정지는 한 번에 100일에 불과하다. 양육비를 다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제재 조치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그 절차가 길고 어렵다. 게다가 출국금지 요청은 채무 금액이 5000만원이 넘는 사람만 대상이다. 아이 한 명에 월 50만원을 준다고 하면 100개월 즉 8년을 안주고 버틸 수 있다. 월 30만원으로 계산하면 13년이 넘게 걸린다. ‘법은 멀고 아이는 자란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운전면허 정지 역시 운전이 생업과 연결되는 사람은 예외로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양육비를 못 받는 아이는 누가 책임지는가.

우리나라 양육비 지급률은 30% 정도다. 한부모 가정 열에 일곱은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의식주 이외에도 의료비 교육비 등이 든다. 이게 없으면 아이들은 결핍된 상태에서 자라게 된다. 이제 양육비 지급에 국가가 나설 때다. 정부가 먼저 필요한 가정에 양육비를 지급하고, 미지급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내용의 ‘양육비구상권법’이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다. 양육비는 단순히 개인 간의 채무관계가 아니다. 미지급은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범죄이자 아동학대다. 이런 인식만 있다면 법을 안 만들 이유가 없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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