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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대구 천재화가가 1934년에 그린 연인 모습, 귀엽고도 당돌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상’ 75x60cm, 종이에 수채, 1934. 대구미술관 제공


샛노란 원피스를 입고 턱을 괸 채 의자에 앉은 이 여인은 누구일까.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그려진 여인 초상임을 감안한다면 태도는 귀여우면서도 당돌한 데가 있다. 농담의 맛을 살리는 수채화 특유의 싱그러움이 원피스의 노란색에 배어 나오며 18세 청춘의 싱싱함까지 표현한다. 흰색의 멋진 모자는 모던 복식인 원피스의 화려함에 화룡점정을 찍고 소매의 레이스 장식은 초상화 주인공의 패션 감각을 암시한다. 그녀는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아내 김옥순(1916∼1942)이다. 정확히는 이인성이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시절 연애하던 신여성이다.

이인성은 대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동년배들이 4학년에 다니던 1922년에야 수창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 재능을 눈여겨본 이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 이영희였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며 그림 그리는 것에 반대했지만 재능은 스스로 꽃피웠고 세상은 그를 부축했다.

놀랍게도 보통학교를 갓 졸업한 29년 제3회 조선미전에서 입선했다. 일본 유학파로 대구에 서구의 미술 기법인 수채화를 전파한 서동진(1900∼1970)의 눈에 띈 건 당연. 서동진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인성을 자신이 운영하던 상업미술 회사에 조수로 고용하고 수채화를 지도했다.

가난한 이인성은 조선미전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 내리 당선되며 조선미전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화가가 됐다. 수상 경력은 대구지역에서 화제가 됐고 지역 유지들은 이인성의 일본 유학을 알선했다. 31년 가을 이인성은 일본에 도착했다. 하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서 수업을 받는 고학생 생활을 해야 했다 . 그런 가운데서도 유학 첫해인 32년에 조선미전 특선은 물론 일본 관전인 제전에서 입선을 하는 성과를 냈다. 대구 지역 유지의 딸 김옥순도 사귀게 됐다. 도쿄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던 김옥순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이 그림에는 한창 사랑에 빠진 남자의 감정이 이입돼 있다. 가난한 고학생의 눈에 비친 신여성의 모습은 눈부시기까지 했다.

복식 전문가인 송미경 서울여대 교수는 “1930년대는 서양에서도 롱 앤 슬림의 원피스가 유행했다”며 “신문 만평에도 이런 스타일이 나올 정도로 첨단을 걷는 멋쟁이 여성들이 입던 차림”이라고 설명했다. 멋쟁이 연인 김옥순이 입은 원피스의 노란색, 의자의 붉은색, 벽의 초록색, 접시의 흰색이 경쾌한 색상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대상의 특징만을 포착한 빠르고 활달한 터치가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인성은 35년 귀국해 김옥순과 결혼했다. 대구 남산병원 원장의 맏사위가 된 것이다. 이듬해인 36년에는 그토록 소망했던 자신의 아틀리에를 병원 4층에 마련했다. 이곳에 ‘이인성양화연구소’를 개설해 후진을 양성했다.

그림 속 주인공인 아내는 42년 불과 26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충격에 빠진 이인성은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이내 재혼했으나 오래가지 못했고 47년 김창경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인성도 오래 살지는 못했다. 50년 6·25전쟁 중 귀갓길에 순경과 실랑이를 벌이다 총기 오발사고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향년 39세였다.

이 작품은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컬렉션 21점에 포함됐다. 이인성 작품은 이를 합쳐 총 7점이다. 삼성그룹의 모태는 이병철 선대회장이 38년 대구 달성공원 옛터에서 시작한 국수가게 삼성상회다. 이건희 회장이 대구가 낳은 간판화가 이인성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해 보인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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