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손톱 너덜너덜해져도 오른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천종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비블럭 클라이밍에서 인공 암벽을 오르며 도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올댓스포츠 제공


천종원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국제대회를 진행하지 못해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 성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배분한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의 지난달 결정에 따라 한국 남자부 국가대표로 도쿄행을 확정했다. 올댓스포츠 제공


생존을 위협하는 감염병의 재난에도 도쿄올림픽 시계는 돌아간다. 근대 올림픽 125년사에서 처음으로 1년을 연기한 도쿄올림픽이 14일을 기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국가대표들은 코로나19의 암운에 가려져 그 끝을 알 수 없는 결승선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1월 6일부터 매주 수요일 국가대표들의 땀과 눈물을 '가자! 도쿄로' 시리즈에 담아왔다. 16번째 국가대표를 마지막으로 시리즈를 종료한다.

2018년 8월 26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월클라이밍센터. 아시안게임 사상 첫 스포츠클라이밍 콤바인 남자부 금메달을 경쟁한 이곳에서 한국 국가대표 천종원(25)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당시 스물두 살 천종원은 난코스를 떨어지지 않고 완주하는 볼더링에 자신이 있었지만, 일정한 시간(올림픽·아시안게임 기준 6분) 동안 경쟁자보다 한 뼘이라도 높은 곳에 있어야 승리하는 리드에서 완숙한 기량을 쌓지 못했다.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센 중력을 맨몸으로 거스를 때 어느 누가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스포츠클라이밍은 땅 위에서 출발해 인공 암벽을 수직으로 타고 오르는 경기다. 천종원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저 해왔던 대로 동작 하나하나에 힘을 쏟으며 인공 암벽을 타고 올랐다. 그렇게 볼더링을 1위로 완주하고 조금 미숙했던 리드를 3위로 선방했다. 그리고 15m짜리 암벽에서 속도를 다투는 스피드를 2위로 골인해 콤바인 남자부 총점 6점을 얻고 전체 1위에 올랐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사상 첫 국제 종합제전 금메달. 천종원은 이제 스포츠클라이밍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경쟁할 오는 7월 일본 도쿄에서 또 한 번의 시상대 정복을 준비하고 있다. 천종원은 지난 11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천종원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 랭킹 남자 볼더링 부문 7위의 강자다. 시즌별로 집계되는 월드컵 랭킹에선 이보다 높은 4위에 자리했다. 스포츠클라이밍의 판세는 최근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했는데, 일본세가 강하다. 남자 볼더링 부분 세계 랭킹 10위권 안에 6명의 일본 선수가 포진해 있다. 랭킹 1위 토모아 나라사키 역시 일본 선수다. 천종원은 그 안에서 일본 이외의 유일한 아시아 선수로 세계 ‘톱10’을 형성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일본의 강세가 예상되지만 천종원은 3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눅들지 않는다. 천종원은 “주 종목인 볼더링에선 자신이 있다. 언제나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훈련과 경기에 임하고 있다. 스피드에서도 개인 기록을 경신해 6.0초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천종원의 스피드 부문 6.0초는 레자 알리푸르(이란)의 세계기록 5.48초를 0.52초 차이로 따라잡은 기록이다. 천종원은 “리드에서 과제가 남았지만, 앞으로 100일간 부족한 점을 개선하면 올림픽에서 충분히 목표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천종원은 초등학교 6학년생 때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생활체육이나 취미 활동으로 실내 인공 암벽을 타는 인구가 늘어나던 2010년 전후였다. 천종원도 그중 하나였고, 보통의 초등학생처럼 금세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부모는 중학교 3학년생으로 자란 천종원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을 전문적으로 해보라고 제안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미래를 고민하던 천종원은 그렇게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혈기가 왕성하고 근력이 붙는 나이에 다시 시작한 스포츠클라이밍은 조금 달랐다. 어린 시절보다 수월했고 재미있었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성장한 천종원은 지금도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을 재미에서 찾는다.

“일단 재미있잖아요. 클라이밍 동호인이 많이 늘었는데, 재미와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난코스를 점령해가는 볼더링에서는 목표를 하나씩 이뤄내는 성취감이 정말 크거든요. 매력적인 스포츠입니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은 생활체육에서 큰 성장을 이뤘지만, 전문체육으로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선수를 육성하는 교육 체계,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저변이 부족한 탓이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들은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유행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천종원은 “코로나19로 국내 대회가 줄었고, 아웃도어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후원을 받지 못하는 선수가 늘었다. 1년 내내 출전할 대회가 없어 훈련만 하는 선수도 있다”며 “한국에서 신기할 만큼 세계 정상급 선수가 나타나고 있지만, 국제대회에서 우승해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종목이라면 꾸준히 성장할 수 없다. 일본처럼 학교와 유소년 체육부터 선수를 육성하는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천종원이 도쿄올림픽에 남다른 각오로 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고 국민적 관심을 받으면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미래를 밝힐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올림픽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 국민에게 종목을 알릴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손톱이 들려 너덜너덜해질 만큼 훈련량을 늘렸어요. 손톱에 강력접착제를 붙인 채 암벽을 타고 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많이 성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