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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잡초 같은 감정



내가 운영하는 제주도 성산읍 책방의 뒤뜰에 얼마 전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한 평 남짓 된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청양고추나 쌈채소를 키워서 여름내 야금야금 떼어 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터만 만들어 놓고는 한동안 깜빡 잊고 있다가 며칠 전 다시 들여다보니 그사이 이름 모를 풀과 들꽃들이 그 작은 텃밭을 빼곡하게 덮고 있었다. 와, 이쁘다! 내가 감탄하자 바로 동네 삼촌의 타박이 들려왔다. 저거 다 잡초 아니냐! 이쁘긴 뭐가 이뻐, 얼른 싹 뽑아내라! 자그마한 꽃까지 피워낸 고운 풀이었건만, 밭에 저런 잡초가 무성하도록 두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면서 삼촌은 손수 풀들을 거침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장에 나가 청양고추와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왔다. 삼촌은 자기 밭도 아닌데 또 도와주러 나섰다. 삽으로 밭을 다시 한 번 갈고 넓적한 포크같이 생긴 물건으로 고랑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간격을 두고 정갈하게 모종을 하나하나 심었다. 흙이 건강해서 곳곳에 지렁이가 눈에 띄었다. 뭐라도 돕고 싶은데 할 일이 없던 나는 삼촌의 발에 지렁이가 밟힐까봐 모종삽으로 지렁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는 일을 했다.

모종을 심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란 장대를 모종 옆에 꽂아서 여린 모종들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하나하나 고정하는 일이 남았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삼촌이 당부했다. 얼마 전 보았던 그 잡초들이 금세 다시 자랄 테니 틈틈이 보이는 대로 뽑아내라는 것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거 놔두면 고추 제대로 안 자란다!” 하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당부했다. “이 고추는 내년에 또 열려요?” 내가 묻자 고추도 올해 먹고 뽑아 버린다고 삼촌은 대답했다. 잡초는 눈에 띄는 대로 뽑고, 고추들은 올겨울에 뽑는다는 이 밭의 질서가 세워졌다. 생명의 질서에 따라붙는 슬픈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것도 어쩐지 잡초 같은 감정 같아 얼른 싹 뽑아냈다.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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