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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비트코인의 적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떨떨하다. 잠에서 깨니 스무 명도 넘는 사람의 메시지가 같은 내용으로 들어와 있었다. 오후부터는 전화도 걸려왔다. 저녁을 먹을 때쯤엔 전화기를 댄 귓불이 뜨거웠다. 친구, 친척은 말할 것도 없고 10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까지 전화를 걸어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돌파해 연일 고점을 경신하던 지난 2월 셋째 주 토요일 아침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그들 대부분은 “얼마를 벌었는가”에 관심을 가졌고, 통화가 조금 길어지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1억원을 넘을까” 혹은 “어느 종목이 유망한가”라고 물었다. 암호화폐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 사이 폭등했던 비트코인에 투자해 일정한 수익을 냈다가 하락장에서 상장폐지 종목을 잘못 골라 투자액 상당수를 날린 실패뿐이라 그들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적당히 둘러대거나 투자를 만류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블록체인이나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같은 말이 오가는 통화에선 조금 더 솔직한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또 폭락하지 않겠어? 내가 그걸 예측 못해 실패했잖아.” 비트코인은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3월로 넘어가면서 몸값을 두 번이나 6만 달러 선으로 끌어올렸다. 국내 거래소에서는 해외보다 과열된 투자 열기로 400만원 안팎의 ‘한국 프리미엄’이 붙어 7000만원 넘는 금액에 거래되기도 했다.

비트코인의 지난해 말 가격 상승은 이미 예상된 일이다. 비트코인의 공급량 조절은 언제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비트코인의 총량은 2100만개로 제한돼 있다. 비트코인은 컴퓨터로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생산된다. 암호화폐 시장은 그 과정을 ‘채굴’이라고 부른다. 생산 과정을 은행에서 화폐를 찍는 발행보다 광산에서 자원을 캐는 채굴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비트코인의 채굴량은 4년마다 한 번씩 상승하는 수학 문제의 난도를 따라 절반으로 줄어든다. 이 시기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했다.

3년 전 암호화폐 광풍은 2016년 여름 비트코인 채굴량이 절반으로 줄고 1년쯤 지나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난해 여름 채굴량은 다시 절반으로 줄었고, 비트코인 가격은 5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여기에 “비트코인이 장기적으로 14만6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의 전망(1월 4일), “테슬라 차량을 비트코인으로 살 수 있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선언(3월 24일)이 암호화폐 시장의 변곡점마다 상승장을 부추겼다.

“달러화보다 금의 대체재인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지난 23일 토론회 발언은 분명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였지만, 투자자들은 ‘금의 대체재’라는 말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한마디에 5만 달러 붕괴 직전에 놓였던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했다.

이쯤 되니 암호화폐 시장에서 전위예술에 가까운 거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블록체인으로 디지털 자산에 소유권을 부여하는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시장에선 미국 영화감독의 방귀 소리 음성 파일이 이더리움 0.2415개에 거래됐는데, 당시 시세로 50만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미국 일간지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칼럼을 NFT 경매에 부쳐 6억원이 넘는 금액으로 낙찰을 받았다. 콘텐츠 생산자라면 귀가 쫑긋해질 만한 일들이 아닌가. ‘콘텐츠는 무료’라고 인식되는 시대니까. NFT 시장은 아직 낙관적인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더리움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NFT 시장의 소유권 가치는 3년 전 암호화폐 거품 붕괴처럼 한순간에 휴지 조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의외로 비트코인 설계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개인이 아닌 집단일 가능성도 있다)의 등장이라고 한다. 그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트코인 110만개를 시장에 내놓으면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그의 속내를 알 길은 없지만, 인간인 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수익을 실현하려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돌파하면 그의 자산은 1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가치를 인정받을수록 파멸로 다가가는 모순의 시장이라면 투자를 놓고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직은 그렇다는 얘기다.

김철오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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