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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복사집마저



서울 청계천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묻지도 않았는데 첫 인사가 가게를 접고 읽고 싶은 책을 구하러 나왔다고 했다. 좋은 책이 많고 값도 저렴하다며 골라 놓은 여러 권의 책을 가리켰다. 그는 꾸준히 다음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늘 혼자서 일을 했다. 인사동 목조건물 2층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80년대 초였다. 40여 년을 한결같이 한자리에서 일을 했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어찌나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는지 스스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활자로 인쇄한 고서들은 종이가 누렇게 바랬고 함부로 만지면 바스러지기 쉬웠다. 더구나 고서들은 글씨가 작아 읽기가 거북했다. 그럴 때마다 확대 복사하면 원본도 보호할 수 있고 읽기도 좋았다. 귀한 책은 복사본을 만들 때 몇 권을 더 묶어 문우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강의 자료를 만들거나 간단한 보고서 같은 소책자를 인쇄할 때마다 그 복사집으로 갔다. 더구나 옛 책은 표지가 훼손된 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를 찾으면 깔끔하게 제본을 해 새 책을 만들어 주었다. 보고서 20여 부를 인쇄한 뒤로는 복사집을 찾지 않았는데 그 뒤에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알았다.

인사동 로터리 부근에는 여행사가 여럿이어서 복사집 일감이 끊이질 않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들 업체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일감도 줄었으리라. 힘들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버텨왔는데 더 이상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남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도 몇 군데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해 왔었는데 거의 한 해를 휴강 상태로 지냈다. 일을 하지 않으니 소득이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다행히 백신을 수입한다고 하니 희망이 보인다. 우리 모두 힘을 내자.

오병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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