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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스타 AI 로 되살리기, 윤리 문제는 없을까

첨단 기술을 동원해 고인을 되살리는 가상 콘텐츠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빅히트 레이블즈 콘서트에서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故 신해철의 모습. 방송사 제공


엠넷 ‘다시 한번’에 등장한 故 터틀맨. 엠넷 제공


엠넷 AI 프로젝트 ‘다시 한번’에서 부활한 故 김현식. 엠넷 제공


MBC 다큐 ‘너를 만났다’를 통해 세상을 떠난 딸과 엄마가 재회한 모습. MBC 제공


“우리는 지난날과의 만남을 꿈꿉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에 숱한 밤을 잠들지 못하게 한 끝없는 질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그 질문에 아낌없이 답해온 이가 있습니다. 뜨겁고 치열하게 우리를 위로한 음악으로 말이죠. 이제 지난날을 마주합니다.”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후 등장한 건 ‘마왕’ 고(故) 신해철이었다. 그가 세상과 작별한 지 6년이 되던 해인 지난해 31일 빅히트 레이블즈 합동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붉은 재킷을 입은 신해철의 모습이 홀로그램 기술로 선명해졌고, 대표곡 ‘그대에게’ 반주가 흘러나왔다. 두 팔 벌려 기운을 뿜어낼 때는 그가 정말 살아 돌아온 듯 했다. 예기치 못한 이른 죽음을 맞은 그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곡인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도 이날 후배들의 도움으로 비로소 완성됐다.

신해철·김현식·김광석 복원한 AI

AI(인공지능) 기술을 포함한 지금의 IT기술은 시공간을 매개하기에 이르렀다.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기계가 이끄는 생태계는 인간의 영역을 잠식하며 온기를 앗아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첨단기술과 휴머니즘은 대척점에 서 있지 않았다. 나와 너를 이어 우리로 만들어냈고, 어제와 오늘을 이어 또 다른 하루를 선물했다.

지난달 엠넷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의 파동이 이어지고 있다. 故 터틀맨과 김현식이 후배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파격보다 충격에 가까웠다.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이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2008년 숨을 거둔 터틀맨은 지난해 나온 가호의 ‘시작’을, 김현식은 사망 3년 뒤인 1993년 발표된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생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노래를 사후에 부르게 된 것이다. 복원된 이들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대중과 연결되길 바랐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재현은 쉽지 않았다. 고인의 목소리를 잘게 쪼개 분석한 음성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노래 반주에 접목했다. AI가 학습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음성 데이터가 필요했는데, 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단계에서 유족과 지인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는 게 핵심이었다. 음성만 복원한 게 아니었다. 페이스 에디팅 기술은 고인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했다. 고화질로 보관된 데이터가 많지 않아 AI가 고인의 외형을 학습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술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최근 SBS에서는 ‘영원한 가객’ 故 김광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1996년 작고한 그 역시 후배 가수 김범수가 2002년 발매한 ‘보고 싶다’를 부르고 있었다. 이 영상은 29일 방송할 SBS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의 예고편이다. 온라인에는 이런 댓글이 줄짓고 있다. ‘아빠가 소리 듣더니 깜짝 놀라서 TV 앞으로 달려오셨어요’.

해외에서는 타계한 가수들의 홀로그램 콘서트가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2012년 코첼라 페스티벌이 시작이었다. 이날 무대에 1996년 피살된 전설의 래퍼 투팍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했다. 2년 뒤엔 2009년 타계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빌보드 시상식에 섰다. 이후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AI 등 IT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너도나도 홀로그램 콘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에는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타계 40여 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고, 지난해엔 2011년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의 월드 투어가 예정됐다가 코로나19로 취소됐다.

영역 넓히는 ‘기술로 빚은 휴머니즘’

터틀맨과 김현식 복원에 성공한 CJ ENM이 최근 엔씨소프트와 손잡은 이유는 콘텐츠와 IT기술을 융합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기술을 녹여 휴머니즘으로 발현시키는 예술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수년간 기틀을 다져온 분야다. 국내에서는 올해 그 영역을 넓힐 것으로 기대돼 엔터 분야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지난해 2월 MBC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국내 VR(가상현실) 콘텐츠 대중화의 신호탄이었다. “나연아 잘 있었어? 엄마 나연이 보고 싶었어”. 엄마가 어린 딸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는 울음을 참으며 손을 뻗어 휘저었다. “엄마 나연이 안아보고 싶어”. 커다란 고글을 쓴 엄마의 앞에는 4년 전 세상을 떠난 나연이(당시 7세)가 서 있었다.

네 아이의 엄마 장지성씨는 2016년 가을 나연이를 떠나보냈다. 목이 붓고 열이 나 단순 감기인 줄 알았는데,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쏟아냈다. 희귀 난치병인 혈액암이었다. 발병 한 달 만에 나연이의 숨이 멎었다. 그런 나연이가 엄마의 눈앞에서 방긋 웃고 있다니. 이날 엄마는 담아뒀던 ‘사랑해’ ‘예쁘다’ ‘잊지 않을게’ 같은 말을 아낌없이 전했다. 사실 엄마의 바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나연이를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갑자기 떠난 어린 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필요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제작진은 나연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기로 했다. 사진·영상에 저장된 데이터를 토대로, 360도로 둘러싸인 카메라 160대가 또래 대역 모델을 촬영해 나연이의 뼈대를 만들었다. 몸짓은 실시간 움직임을 기록하는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했다. 음성은 몇 분 남아 있지 않은 동영상에서 추출한 데이터와 또래 아이 5명의 목소리를 빌려 딥러닝 기술을 적용했다.

이 콘텐츠는 지난달 10일 열린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이 주관하는 TV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은 국내 콘텐츠 세계화의 새로운 판로를 뚫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기술력을 활용한 콘텐츠에 휴머니즘을 가미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잊힐 권리… 윤리적 문제 선행돼야

국내외에서 ‘홀로그램 콘서트’ 혁명이란 말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고인도 사후 무대에 동의했을까? 2014년 사망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영원히 기억되기보다 잊힐 권리를 택했다. 타계한 스타들이 홀로그램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유서에 자신의 생전 모습을 2039년까지 어떤 영역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고 썼다.

기술을 동원해 고인을 되살리는 행위는 추모와 돈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양날의 검이다. 영리사업자가 뛰어들어 복원해낸 고인의 콘텐츠를 과연 추모의 영역에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콘텐츠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생전 모습을 기술의 힘을 빌려 그저 흉내 낸 것에 불과한 ‘형상’과 팬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인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콘텐츠의 확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복원에는 고인의 저작권·초상권 등을 지닌 유족 동의가 가장 중요한데, 오·남용을 경계하는 게 첫번째다. 실제로 2011년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휴스턴이 잠든 지 10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그의 홀로그램 콘서트 소식이 터져나왔다. 일부 팬은 그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고인의 휴식을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들은 고인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말을 빌려 ‘유령 노예’라는 단어로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분쟁을 최소화하려면 인간의 존엄성 훼손과 관련한 윤리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고인의 인권에 관한 폭 넓은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에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 엠넷 ‘다시 한번’에는 이런 제작진의 고민이 짙게 묻어난다. 제작진은 터틀맨과 김현식의 추모 공연을 기획하며 진정성에 방점을 찍었다. 방송 절반가량을 고인의 발자취를 톺아가며 업적을 복기하는데 할애한 이유다. 왜 이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는지, 왜 여전히 이들을 그리워하는지 시청자를 설득하는 시간이었다. 음원을 출시하지 않은 이유도 상업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기획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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