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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트럼프를 코로나 덫에 빠뜨린 것들



미국 대통령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얘기가 현실이 됐다. AP통신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방국·적대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만약’이라는 가정(假定)의 질문을 하는 것이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물음 하나를 던져본다. 올해 11월 3일 미국 대선이 없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걸렸을까.

트럼프 대통령을 코로나19에 감염시킨 가장 큰 바이러스는 대선에 대한 그의 강박관념과 집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 초기부터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무시했다. 그는 수도 워싱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국면에 코로나19 확산보다 주식시장의 붕괴를 더 걱정했다. 또 코로나19 처방책을 내놓기보다는 연방준비제도(Fed)에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경제가 무너졌다가는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3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국경 통제 강화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호기로 바라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21만명을 넘었고, 확진자 수는 745만명에 달한다. 그 기사가 사실이라면 오판도 그런 오판이 없다.

코로나19 위험을 경시하는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5일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에서 열렸던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유세를 취재했다. 40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모였는데, 60∼70%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한 지지자는 마스크를 벗고 대화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만 씌울 수는 없다. 미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도 있다. 바로 총기다. 올해 미국에서 총기 판매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합법적으로 총기 구매를 시도한 건수가 2593만건을 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에만 3000만정의 총기가 미국에 새로 풀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기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업주들이 코로나19로 생활고를 겪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선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더욱 늘어날 경우 총기를 이용한 강력 범죄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려다가 총기 범죄로 인한 희생자가 증가할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는 셈이다. 미국이 경제 정상화를 서두른 것은 대선에 혈안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탓이 크다. 그러나 총기 범죄에 대한 우려도 가게 문을 빨리 열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무능력한 공화당도 책임을 면할 순 없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처 국면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보이지 않았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주눅이 들어도 단단히 든 모양새다. 잘못 대들었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그의 지지자들에게 막말 공세를 받는 것도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쇼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 쓰는 것을 꺼리고, 검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약을 복용한다고 말할 때도 제동을 거는 공화당 의원들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었겠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 지금 모습도 정상은 아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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