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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가창력과 인기



한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최근의 트로트 열풍은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 될 만하다. 어떤 유행도 시대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떤 기류나 사회 현상이 반영된 것인지 다양한 추측과 해석이 나올 법하다. 이를테면 장년층 특히 여성들의 문화 향유 욕구가 커졌다든지, 젊은 세대들이 유튜브로 옮겨가는 바람에 텔레비전 시청자 연령이 대체로 높아졌다든지, 직접적이고 멜로적 요소가 강한 트로트 가사가 코로나19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제공한다든지, 아날로그적 향수와 복고적 경향의 수혜라든지 하는 식으로. 아마 그 모든 요소들이 두루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우상이 된 트로트 가수들의 사연도 회자됐는데, 그들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가수였다. 10년 넘게 이름 없이 노래를 부른 이도 있었다. 무대는 신장개업한 가게나 지자체의 무슨 꽃 축제 같은 데였다. 방송 출연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열심히 노래를 불렀지만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그들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래를 잘 부르게 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기가 없을 때도 노래를 잘 불렀을 것이다. 가창력이 인기 비결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른바 성공과 실력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느 영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실력은 유명해지기 위해 요구되는 유일한 조건이 아니다. 나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 예를 여러 분야에서 많이 보았다. 물론 실력 없이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공했다고 해도 그 성공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성공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실력이 있다고 반드시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다. 사회의 불공정이 그 이유일 때도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여러 요인이 두루 작용해 한 사람의 운명을 만든다.

시대의 공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화 예술의 영역은 더욱 그렇다. 물론 인기를 얻고 유명해지기 위해 실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지만, 인기 없고 덜 유명하다는 것이 반드시 실력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실력을 가지고도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아 덜 대우받고,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실력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시대와 잘 어울려 더 대우받는다. 뒤늦게 인정받아 역주행을 하는 예도 있고, 심지어 죽은 다음에 재조명되는 예술가들도 있다. 어떤 시대에 크게 환영받던 사람이 시대가 바뀌면서 외면받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걸 마다하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은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진리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전도서 3장)

시대를 잘 만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유명해졌다면 그 행운을 감사할 일이지 우쭐댈 일이 아닌 것은 그 행운이 자신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력이 하는 일은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성공을 만드는 것은 좋은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시대를 잘못 만나 지금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유명해지지도 않았다면 자기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애쓸 일이지 불운을 탓하거나 좌절할 일이 아니다. 그 불운이 자신의 실력 탓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작가의 꿈을 가지고 습작을 하는 이들이 많다. 어떤 이는 꿈을 이루지만 그렇지 못한 이가 더 많다. 공모전에 투고하는 그들에게 가끔 이런 조언을 한다. “당선되면 운이 좋았던 것으로 생각하고 운이 달아나지 않도록 더 노력해라. 당선이 안 되면 아직 운이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 더 노력해라.”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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