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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사랑하면 사라지는 욕구



나는 물욕이 없다. 물욕이 없지만 꾸준히 소비한다. 나의 모든 소비는 남에게 선물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생일이나 기념일 때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선물을 마구 퍼준다. 물론 아무에게나 그러는 것은 아니다.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마구 퍼준다. 길을 걷다가 예쁜 소품을 발견하면 누군가에게 선물할 생각부터 한다. 아무리 예뻐도 나는 별로 갖고 싶지가 않다.

한때 모두가 나처럼 물욕이 없는 건 아닐까 싶어서 선물을 전부 향초로만 해준 적이 있었다. 향초는 평생 남지 않고 금방 사라지니까 그랬던 것인데, 내가 선물해준 향초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하는 친구를 보고선 그때부터 향초를 선물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최근에 조개를 압착시켜 만든 특이하고 귀한 접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접시였는데 오로지 선물하기 위해서만 구매했다.

또한 친구에게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서 가방을 선물했고, 어머니에게 새로운 돋보기안경을 맞춰드렸다. 어머니의 돋보기안경이 낡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더 큰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안경점에 도착해서 가장 비싸고 좋은 안경테와 안경알로 맞춰드렸다. 이상하게도 선물할 땐 돈을 아끼지 않게 된다. 점점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데도 말이다.

가진 게 없어도 선물하며 사는 삶은 행복하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너무도 크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시를 써서 선물하곤 했었다. 물질적인 게 아닌데도 시를 받은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었다. 한 사람을 위한 창조물일 경우 시는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한 시집서점에서 ‘선물하기 위한 시 쓰기 수업’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어딘가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는 시를 선물 받게 될 거다. 그게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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