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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초대 질병관리청장이 해야 할 일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더부살이를 하다 16년 만에 자기 집을 갖게 됐다. 독립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져 조직과 인력 등 덩치가 커졌다. 감염병 등 질병 대응 컨트롤타워로 위상과 틀을 갖췄다.

신종 감염병 같은 대형 재난은 국가 위기이면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독립기관 승격 필요성은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를 겪으며 줄곧 제기돼 왔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방역체계 강화로 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됐지만 과장급 이상 인사권과 예산권은 복지부 관할이어서 역량 발휘에 제한점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5년 만에 불쑥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수 년간 메아리에 그쳤던 핵심 방역체계 개편이 한순간에 성사된 것이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앞으로는 방역에 실패하더라도 인사·예산권이 없어 그랬다느니 하는 핑계는 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좋은 집이 지어졌으니 이제 그 안을 잘 채우는 일이 남았다.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어느 곳이나 ‘초대’ 혹은 ‘처음’이 붙는 자리는 엄청난 부담과 책임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정 청장의 흰 머리카락이 더 늘지 않을까 염려된다.

당장 발등의 불은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막는 것이다. 정 청장은 지난 8개월여간 방역 사령관으로서 역할을 무난히 수행했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대응을 차분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국민에게 전해 왔다. 앞으로 추석과 개천절 연휴 고비를 또 넘어야 한다.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유행하는 ‘트윈데믹’에도 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보다 더 면밀하고 냉철한 판단력과 대응이 요구된다.

정 청장의 또 다른 중요한 소임은 질병관리청이란 새 집의 초석을 튼튼히 다지는 일이다. 복지부 산하기관 시절의 오랜 타성을 버리고 어떤 신종 감염병이 찾아와도 신속 대응할 전문가 집단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정 청장은 지난 14일 개청 기념사에서 “더 전문적으로, 더 체계적으로, 더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려면 터전을 잘 닦아놔야 하는데, 초대 청장이 해야 할 일이다.

부족한 역학 조사관이나 검역관 등 전문 인력을 하루빨리 충원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책임감을 갖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간 질병관리본부에는 국·과장급의 내부 승진 인력이 부족해 복지부 행시 출신 관료들이 대거 포진해 왔다. 전문 연구관이나 연구사로 채용된 인력이 과장, 국장을 거치며 ‘한우물 파기’로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연속성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한데, 그러지 못했다. 역학 조사관의 경우 2~5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신분이어서 의사 출신은 장기 근무자가 거의 없었다. 질병관리청 자체 인력이 성장할 때까지 일부 국·과장은 경력직을 뽑거나 2~3년의 개방형 직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내부에 역학 조사관의 체계적 양성과 교육을 맡을 역학조사원의 설립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보건기능 강화를 위해 신설된 복지부 2차관과 질병관리청장의 갈등이나 알력이 표출될 우려가 있어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 청장 스스로 그간 제기된 이런 과제들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관건은 추진력이다. 정 청장의 리더십이 발휘됐으면 한다. 정 청장은 개청 기념사를 마무리하며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 명의 선원으로서 끝까지 함께 항해를 마치겠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항해를 끝낸 후 후임 선장에게 키를 물려줄 즈음에는 그 어떠한 태풍도 헤쳐나갈 강한 배로 변모돼 있길 기대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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