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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중국식 민주주의



중국 외교부는 매일 오후 3시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현안 브리핑을 한다. 미국을 향한 전투적 발언으로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은 자오리젠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았던 지난 11일 브리핑에선 이런 문답이 오갔다. 현지 매체 기자가 ‘중국 공산당이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발언을 언급하며 정부 입장을 물었다. 그러자 자오 대변인은 “미국에선 부자들이 우선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반면 노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주요 희생자가 되고 있다”며 “미국의 일부 사람이 무슨 자신감으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전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에는 중국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말했다.

자오 대변인의 말에는 중국이 다른 건 몰라도 코로나19 대응에서만큼은 미국보다 앞섰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게 다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것이 요즘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레퍼토리다. 중국은 체제 비판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코로나19 책임론에 휩싸인 중국의 방역 성과는 ‘인민을 위한 중국식 민주주의’를 대내외에 부각하기에 딱 맞는 이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연설에서 “코로나19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성과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 제도의 우수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19에서 해방된 분위기다. 특히 중국 당국이 하늘길을 막으면서까지 통제했던 수도 베이징은 일상을 거의 회복했다. 거리에는 마스크 안 쓴 사람이 태반이고 식당과 술집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직장인은 출근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간다. 건물 출입 시 체온을 재고 ‘젠캉바오’라는 건강 인증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일이 일상화됐지만 관리가 삼엄하지는 않다. 톈진에서의 2주 격리와 3번의 코로나19 검사 끝에 지난 8일 베이징에 발을 들인 기자로선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만큼 느슨하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국에 중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바이러스 취급받는다는 불편함과 이 정도 검역 시스템이면 코로나19 감염자는 중국 땅을 밟을 수 없겠다는 묘한 신뢰다. 일단 중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면 중국 대사관이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출국 3일 전 발급받은 코로나19 음성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중국 공항에 도착하면 방역 당국이 입국자를 대상으로 다시 코로나 검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정한 시설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한 뒤 세 번째 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이 나와야 베이징으로 이동할 수 있다. 중국은 자국 내에선 확진자가 나온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주민을 전수검사하는 방식으로 추가 확산을 막았다. 이런 엄격한 통제 조치는 애초 ‘방역과 경제’ ‘방역과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필요가 없는 중국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해 밀어붙이면 안 되는 게 없는 곳이 중국이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어찌 됐든 중국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의사와 자유를 제한했던 것이 가져온 결과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이를 중국식 민주주의의 성과로 포장해 선전하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 베이징 정착 준비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중국이니까”다. 일이 잘되든 안 되든 대부분의 사람이 이 한마디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다. 이게 꼭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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