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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석 칼럼] 사태 키운 추미애 화법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고 호소해 대선 후보가 된 노무현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태도에 대중은 열광했고 감동
“소설을 쓰시네”로 쏘아붙여 아들 문제 더 악화시킨 추미애
냉소적인 발언으로 무시하고 설득하지 못해 뭇매 맞아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이런 아내를 계속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자격 없다고 판단하면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2002년 4월 17일 포항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천년민주당 경북지역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자 경쟁자였던 이인제 의원과 일부 언론이 노무현 후보 장인의 6·25전쟁 때 좌익 전력을 문제 삼자 노 후보가 연설에서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하던 필자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다수의 군중처럼 노 후보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속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겼구나”라고 단정해 버렸다. ‘대통령 되려고 아내를 버릴 순 없다’는 노 후보의 말 한마디는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고 그에게 대통령 후보직을 안겨줬고, 그는 이후 대통령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소위 말하는 명연설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낮은 자세로 솔직담백하게 가슴으로 말하는 그의 태도에 많은 사람이 열광했고 감동했다. 그의 가슴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중의 귀나 머리가 아닌 가슴을 향해 깊숙이 파고들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황제 휴가’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연설은 시사점이 크다. 추 장관의 아들 서모씨 관련 의혹의 실상은 이렇다. 서씨는 입대 전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더라면 군 면제도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정치적 구설에 오를까 걱정해 기피하지 않고 입대했다. 군 생활 중 오른쪽 무릎도 또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왼쪽 무릎을 수술했던 병원에서 오른쪽 무릎을 수술받기 위해 병가를 냈다. 그런데 수술 후 계속 피가 고이며 물이 찼고, 군에서 개인 휴가를 더 쓸 수 있다고 해서 휴가를 얻었다. 병원에서 수술 후 3개월 이상 안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지만 서씨는 완치가 안 된 상태에서 부대로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민원이 있었고, 일부 특혜와 불법이 있었다는 의혹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검찰 수사 등으로 분명히 밝혀질 일이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감안하면 추 장관의 대처방식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추 장관이 군에 간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 특히 수술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던 아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등을 있는 그대로 호소했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흘러오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어느 부모도 같은 상황이라면 군부대에 전화해보고, 어떤 연줄이라도 찾아서 부탁하려고 안간힘을 썼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 장관은 “소설을 쓰시네”라는 말로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버렸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다는 의미로 말했겠지만 무시하듯, 한심하다는 듯 의혹을 제기하는 국회의원에게 보인 태도는 오히려 큰 화근이 됐다. 만약 당시 추 장관이 “그럼 아픈 내 아들을 그냥 방치하란 말입니까. 어미로서 아들이 평생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지는 않을까 왜 걱정이 들지 않겠습니까”라고 호소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전날 “아들의 군복무 시절 문제로 걱정을 끼쳐드려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고 밝힌 추 장관은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병원에 입원하거나 아파도 제가 병문안도 가보지 못했다.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는 아들”이라며 울컥했다. 뒤늦게 ‘소설을 쓰시네’ 발언을 사과하고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호소했지만 이미 늦었다.

추 장관은 5선 의원에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최초로 임기를 채운 당 대표 출신이다. 정치권에서 ‘추다르크(추미애+잔 다르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꼿꼿하고 강인한 이미지와 추진력의 소유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이유도 검찰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서다. 그는 이번에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검은색은 검은색이고, 흰색은 흰색입니다. 저는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강변할 정도다. 하지만 그의 강단 있고 매몰찬 태도가 아들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독이 됐다.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고, 자신 있어도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이나 의원들을 향해 냉소하고, 무시하고, 거칠게 반발할 것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여당 내에서도 “애티튜드(태도)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말이 나왔을까.

오종석 논설위원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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