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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떠나야만 살아지는 사람들



떠나야만 살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업계 종사자이거나 수출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떠나야만 살아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이 안에 속한다. 보통 직업이 시인이면 책상 앞에서 모든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먼 곳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지 않으면 모든 창작은 중단이 된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터짐과 동시에 나의 행동반경은 어마어마하게 줄어들었다. 쉽게 드나들던 제주도조차도 못 가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머무르려고 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일정도 취소시켰다. 강연이나 북콘서트를 위해 지방으로 드나들 수도 없게 됐다. 그러니 무슨 창작과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방 안에 틀어박혀 독서나 하는 수밖에.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창작해보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단 한 문장도 써낼 수가 없었다. 익숙한 공간에만 머물러 있으니 정신과 몸이 무기력해지고 감각은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러닝머신이었다.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지만 떠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러닝머신 말이다.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창작이 가능해졌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고민해볼 것도 없이 “NO!”다. 하는 수 없이 여행도, 러닝머신도 전부 포기하고 방 안에만 갇혀 지낸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도움닫기의 상태 말이다.

누구보다도 멀리뛰기 위해서는 도약력을 증대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럴 때 스포츠에서 하는 것이 ‘도움닫기’이다. 그렇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닫기이다. 그래야 훗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조금만 참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도움닫기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도움닫기 할 수 있는 공간은 아주 넓다. 모두가 그 위에 마스크 쓰고 떨어져 서서 조금만 더 버티자.

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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