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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묵묵히 멈춤 없는 섬김… “주어진 사명 감당할뿐”

박영철 전주은일교회 목사가 지난 20일 교회 식당에서 지역 내 홀몸 어르신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전달하고 있다. 전주=강민석 선임기자


박영철 목사와 정혜숙 사모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전북도와 전주시로부터 받은 표창장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아래 사진은 전주은일교회 전경. 20만km를 달린 2000년식 승합차가 앞 마당에 서 있다. 전주=강민석 선임기자


기나긴 장마 후 폭염이 찾아온 지난 20일, 전북 전주 효자동의 한 다목적 건물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쓴 채 하나둘 모였다.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자 구수한 냄새와 정겨운 인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아이고, 어머니 오셨어요. 많이 더우셨겠네. 무릎 안 좋으시다더니 좀 괜찮으세요. 일단 이쪽으로 앉으셔요.”(정혜숙 전주은일교회 사모)

어르신들이 플라스틱 칸막이가 세워진 식탁에 자리를 띄워 앉자 박영철(65) 전주은일교회 목사의 유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이 없어요. 요즘 고민도 걱정도 많으시지요. 하나님 앞에 믿음의 도장을 쾅 찍으면 문이 열릴 겁니다. 어떤 문? 천국문이요! 하하.”

잠시 후 식탁 위엔 닭고기 감자볶음 두부된장국 등 5찬이 담긴 식판이 놓였다. 차순애(가명·81)씨는 “일주일에 세 번은 여기서 점심을 먹는데 집밥보다 더 꿀맛”이라며 “교회 덕분에 늘 든든하다”고 말했다. 올해로 20년째, 교회가 지역 내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 마련하는 점심 봉사 모습이다.

박 목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엔 하루 100여분까지도 모셨는데 지금은 20~30여분 밖에 대접하질 못해 죄송할 뿐”이라며 아쉬워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박 목사와 정 사모가 전주에 둥지를 튼 건 2001년 4월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 박 목사가 광주 송정중앙교회 부교역자로 사역 5년차를 맞았을 때 기도에 응답이 왔다.

“서울 광주 전주, 세 곳에서 청빙이 왔지요. 전주는 그중 목회환경이 가장 열악한 곳이었어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나가겠다’고 서원해왔으니 지금이 그 기도에 응답을 받을 때인 것 같다고요.”

교회가 위치한 곳은 전주 시내 중심부와는 거리가 떨어진 외딴 동네였다.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홀몸노인들, 일상생활조차 힘겨운 장애인, 소외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동네를 채우고 있었다. 20년 동안 담임 목회자가 세 번 바뀔 정도로 교회 공동체 내 신뢰도 무너진 상태였다.

두려움이 없던 부부에게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도전이 됐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제쳐두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보였다. 당장 배곯는 이웃을 돕는 게 급선무였다. 교회 주방을 사역본부 삼아 팔을 걷어붙였다. 이와 잇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매일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구워 전달하고,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을 위해선 반찬을 만들어 배달했다.

얼마 후엔 교회 인근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 ‘한사랑 쉼터’란 이름의 무료급식소를 차리고 일주일에 네 차례씩 이웃의 점심을 책임졌다. 20년 동안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이어지는 점심 봉사의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대접한 끼니가 10만명분을 훌쩍 넘는다.

끼니를 챙기고 보니 이번엔 방치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 사모는 “교회 앞마당을 놀이터 삼아 노는 아이들을 데려와 글도 가르치고 숙제 도와주던 게 공부방이 됐다”고 회상했다. 가정불화로 부모의 손을 떠난 아이들, 형편이 어려운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다 보면 어느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됐다.

귀갓길은 박 목사의 몫이었다. 전주에 온 이후 지금껏 박 목사의 발이 돼 20만km를 달린 2000년식 승합차가 든든한 동역자다. 승합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가로등 하나 없는 농로를 지나 집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서야 하루를 마무리했다. 교회가 만든 공부방은 2004년 전주지역 내 첫 번째 지역아동센터로 발돋움해 지금도 아이들의 ‘희망터’가 돼주고 있다. 박 목사는 “성탄절 날 집에 큰불이 나 길바닥에 나앉게 된 다문화가정 준현이네는 성실하게 공부해 공무원이 됐고, 중학생 때 아버지를 여읜 민국이는 외로움을 신앙으로 이겨내며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며 웃었다.

‘섬김이 곧 힘이다’를 목회의 지향점으로 삼은 교회는 이웃 섬김 이미용봉사, 지역 어르신 효도관광 등 사시사철 섬김을 이어가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가 돼줬다. 교회 한편에 걸려 있는 표창장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엔 전주시, 2014년엔 전라북도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박 목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웃을 위해 행한 일들이 알려져 부끄러울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지난 4월 필리핀 선교지에 코로나19가 확산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땐 부족하지만 재정을 모아 마스크와 신발 등을 보냈다.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고 수혜자들이 종교적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대부분의 사역은 2009년 비영리단체로 설립한 ‘한사랑복지회’가 진행한다. 교회가 품은 또 다른 비전은 평생을 선교지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이 은퇴 후 쉼을 누릴 수 있는 선교센터를 전주에 마련하는 일이다.

박 목사는 “쉽지 않은 목표지만, 하나님께선 늘 기적을 이끄시는 분이기에 묵묵히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뿐”이라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전주=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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