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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아베 이후 한·일 관계는



지난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건강상 이유로 사퇴를 발표했다. 지난 8년간 한·일 관계가 악화한 탓에 아베 총리의 사퇴 발표 뒤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작다. 한·일 갈등의 원인은 인물 변수보다 정책과 구조 변수가 크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 정부, 집권 자민당, 일본국민 입장은 거의 하나로 봐도 좋다. 먼저 정책 변수부터 그렇다. 대북정책에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 충돌하고 있다.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 어렵다.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불가역적으로 포기하면 그에 상응해 단계적으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은 다르다. 납치자 문제 해결은 물론, 북한 내 모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중·단거리 미사일의 신고, 검증, 폐기가 완전히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주도했고, 독자적 금융 제재까지 하고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합의 파기 논란은 장기간에 걸쳐 양국 정부와 국민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2018년 11월 사실상 업무종료로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됐다. 재단 잔금과 한국 측 출연금을 모아서 한·일 양국이 유엔 전시 성폭력 치유프로그램에 기금을 내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거절했다. 일본 외무성 해외공관에는 위안부 대책과 소녀상 철거가 중요 업무로 돼 있다.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강제징용 보상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징용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린 이후 한·일 관계는 상호비판과 불신에 빠져들었다. 한국은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 민사소송이며 정부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본다. 일본 정부와 국민은 한국이 국제질서와 청구권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 타협의 여지는 거의 없다. 내년 중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는 기정사실화됐다.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효력 종료 카드를 휘두르면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한·일 갈등의 구조적인 요인은 더욱 심각하고 장기적이다. 케네스 오간스키의 ‘세력 전이론(power shift theory)’은 국가 간에 국력이나 군사력이 경쟁 상태일 경우 양자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위스 로잔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세계경쟁력 연감에서 1990년에 1위를 달렸던 일본은 2019년에는 30위로 추락했다. 2000년에서 2018년까지 약 20년간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3배나 성장한 반면 일본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중국 11배, 러시아 7배, 미국은 2배나 성장했는데도 말이다. 일본의 방위비 예산은 세계 5위, 한국은 6위다. 국방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자면 한국이 2.6%이고 일본은 1%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BTS, K-뷰티, 한국소설 붐은 일본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문화교류의 불균형은 점차 한국 우위로 기울 것이다. 추격해오는 한국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마음은 우파 매스컴과 인터넷상에서 일상적인 ‘한국 때리기’로 거친 민낯이 드러난다.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 심리는 자칫하면 집단적 광기로 흐르기 쉽다. 한·일 갈등과 대립은 아베 총리가 바뀐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정책과 구조 요인이 잠복해 있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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