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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미술] 동해의 거친 화산섬… 살포시 앉은 곡선의 황홀

김찬중 건축가가 설계한 경북 울릉군 북면 추산리 ‘코스모스 리조트’는 자신의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튀지 않는 겸손한 건축물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천체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비정형 건물 2개 동이 바다를 조망하는 천혜의 절경 위에 살포시 얹혀 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김찬중 건축가. 최현규 기자


김찬중 건축가가 서울에 지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최현규 기자


하나은행 삼성동 지점.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동해바다 저 멀리 울릉도의 랜드마크 ‘코스모스 리조트’를 알게 된 건 페친이 자랑하듯 올린 사진 덕분이었다. 그 리조트를 지은 김찬중(건축사무소 더시스템랩 대표·51) 건축가는 미술 작품 하는 작가로 먼저 만났다. 2015년 서울 이태원의 허름한 집을 개조한 대안공간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건축적 랩소디’전이 열렸는데, 그 때 작품을 출품한 그의 이름이 이상하게 기억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눈이 휘둥그레질 집을 지었다니, 자못 궁금해졌다.

지난해 10월 독도의 날에 맞춰 취재차 울릉도에 갔다. ‘앗싸, 코스모스 리조트를 구경할 기회구나’ 싶었다. 변덕스런 기상여건 탓에 배가 독도에 정박할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보름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독도를 밟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는데, 코스모스 리조트를 본 감동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평생의 기억이 됐다. 독도가 북처럼 심장을 건드렸다면 코스모스 리조트는 하프처럼 영혼에 스며들었다. 코스모스 리조트는 지독한 배 멀미를 열 번이라도 감수해도 좋으니, 보고 또 보고 싶은 영혼의 건축물이었다.

수익은 덜 나더라도 ‘버킷리스트’를…

울릉군의 북면 추산리. 병풍처럼 둘러싼 수직 암벽의 귀퉁이가 송곳니처럼 우뚝 솟아 송곳산(추산)이라고 불리는 검은 바위산 아래 코스모스 리조트는 순한 아이처럼 엎드려 있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운 자세로 말이다. 만화영화 주인공 ‘무민’의 피부처럼 희고 매끈한 건물 2개 동이 조금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었다. 엄해 보이지만 속은 한없이 자애로운 할아버지 앞에서 떨어져 놀고 있는 손자들처럼 보였다. A동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팔랑개비 날개처럼 소용돌이쳤다. B동은 눕혀놓은 소라고동의 옆구리 곡선처럼 가지런히 휘어진 형태였다. 추산의 높이는 432m. 그 아래 자리잡은 이 리조트는 겨우 2층이었다. 객실은 2개동을 합쳐봐야 총 12개. 통상의 리조트가 객실수 100개 이상을 보유한 것과 차이가 나 그 작은 규모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규격화된 네모 건물, 자본을 탐해 치솟은 빌딩에 둘러쌓여 살아온 우리에게는 상상초월의 건축물이었다. 건축물도 한없이 저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구나 싶은 ‘겸손한 건축물’이었다.

그 호텔을 처음 봤을 때 세 번 놀랐다. 우선 경관. 일주도로를 끼고 차로 달리다 45도 급경사의 산비탈을 타고 올라서는데, 그런 놀라운 전망을 가진 천혜의 땅이 나타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화산섬이 만들어낸 기이한 바위산을 먼저 마주하고 있고, 멀리로 고개를 돌리면 철썩거리며 기암을 때리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그 건물이 갖는 부드러운 곡선의 외관이었다. 세 번째가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은 듯한 건물의 규모였다.

“객실수는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수익은 적게 나도 좋으니 버킷리스트에 올릴, 그런 건축물을 지어주세요. 우리나라에도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그런 건축물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2015년 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리조트 설계를 요청받은 김 대표는 이 주문이 믿기지 않았다. 경제성을 따지는 게 통상의 건축주 태도 아닌가. 그래서 ‘설득의 기술’을 발휘해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으로서의 정성적 가치를 경제적인 정량적 수치로 바꾸어 제시해 건축주를 설득하곤 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럴 필요도 없이 코오롱그룹에서 먼저 역사에 남는 건축물을 만들라고 제안해온 것이다. 좋은 집, 좋은 건축물은 이렇듯 건축가 혼자 힘으로 되는게 아니다. 건축가와 건축주와 함께 마주보고 손뼉을 쳐서 만들어내는 하모니의 결과다.

종이처럼 얇고 휘어지는 건축물

‘이런 곳에 건물을 짓는다는 건 죄악이야, 송곳산은 수 만 년 전부터 있던 이곳에 있던 주인이잖아. 그러니, 내가 짓는 건물은 최소한 송곳산을 대적해선 안돼. 이 천혜의 환경에 살포시 앉는 아이 같은 존재여야 해.’

김 대표는 설계를 구상하러 처음 송곳산을 찾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단다. 한국의 노년기 산과는 전혀 다른 비경, 영화 ‘반지의 제왕’을 찍었을 법한 태고적 신비가 그곳에 간직돼 있었다. 원래는 울릉도 너와집 형태의 펜션이 있던 자리였다. 코오롱 이웅렬 회장은 처음 이곳을 봤을 때 땅에서 나는 기운에 감동했고,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며 사원 복지시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것이 세상 사람과 공유하는 리조트 아이디어로 발전한 것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이 원시의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물의 형태는 도대체 어떠해야할까. 그런 질문을 안고 몰입의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문득 별이 보였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쏟아질 것 같은 별. 그래, 그거였다. 초저녁에 떠서 새벽에 사라질 때까지 별이 그리는 포물선의 궤적이 눈앞에 그려졌다. 다이내믹한 천체의 비가시적인 움직임을 담은 리조트 ‘코스모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코스모스 리조트는 ‘콘크리트의 재발견’ ‘콘트리트 혁명’으로 불리며 건축계를 놀라게 했다. 통상 콘크리트 건물의 두께는 30㎝다. 무겁고 육중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콘크리트 건물인데도 두께가 12㎝에 불과하다. ‘초고강도 콘크리트(UHPC·Ultra-High Performance Concrete)로 지었기 때문에 철근을 안 써도 콘트리트 자체가 구조체 역할을 한다. 배합할 때 강섬유를 섞어 만든 신소재다. UHPC도 공장에서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데, 이 리조트는 세계 최초로 UHPC현장 타설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종이처럼 얇아서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소라고동과 팔랑개비를 닮은 유선형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코스모스 리조트는 2015년 10월 설계를 시작해 2017년 9월 준공해 한달 뒤 오픈했다. 그로부터 1년 여 만인 2019년 1월 영국의 유명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가 선정하는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19’에서 세계 최고의 호텔로 뽑혔다.

뿐인가. 다녀온 사람마다 자랑하듯 SNS와 블로그에 올린다. 배멀미를 감내하고 수시간 배를 타고 가야하는 국토의 동쪽 끝 섬에 있지만 서울에서 더 많이 회자되는 곳이 됐다. 그렇게 조용히 ‘버킷리스트’가 되어가는 중에 있다.

건물에 별명을?…그럼 김찬중표

김 대표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2016년 두 차례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다. 2018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디자인상인 IF디자인어워드와 레드닷디자인어워드를 수차례 받았다.

그런 만큼 서울 곳곳에서 표정있는 그의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건축사무소가 입주해 있는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건물, 마곡서울식물원, 하나은행 삼성동 지점, 한남동 현창빌딩, 신사동의 패션브랜드 폴 스미스 플래그십스토어 등 10여곳이다. 이들 건물은 공통적으로 흰색에 곡선 형태를 하고 있다. 흰색을 선호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형태에 더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다. 예컨대 빨간색을 쓰면 형태보다는 ‘빨강 건물’이라는 식으로 색깔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그가 지은 건축물은 형태로 기억에 남는다. 건축물마다 사람들이 지어준 별칭이 따라다닌다는 게 그 증거다. 이를테면 하나은행 건물은 ‘오징어 빨판 건물’, 폴 스미스 플래그십스토어는 ‘어금니 빌딩’, 현창빌딩은 ‘스머프 집’ 식으로 불린다. 콘크리트로 지었는데도 기존의 콘크리트 건물과 느낌이 달라서인지 촉각적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서울은 천지가 비슷한 건물뿐이다. 무표정하다. 이런 대도시에서도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보자마자 별명이 혀끝에서 맴도는, 귀엽고 친근한 건물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럼 그건 김찬중표 건물이 틀림없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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