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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의 문학스케치] 세계관이 깃든 문장





교과서에 나오거나 시험에 출제되는 소설은 익숙하다 못해 지겹다 할 분들이 대부분일 터라 나 역시 되도록 그런 소설에 대한 언급은 피하려 애쓴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는 되풀이해서 찾아오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상념에 잠기면 버릇처럼 윤흥길의 소설 ‘장마’를 떠올리게 된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사연 역시 예전에는 알음알음 전해졌으나 정양 시인의 가족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는 듯하다. 정작 정양 시인 스스로는 이 경험을 시로 쓰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려 소설 ‘장마’가 발표되고서도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내 살던 뒤안에’라는 시에 담아냈다. 하나의 체험이 소설이 되고 시가 되어 오래도록 쓰이고 읽히는 이유는 결국 그 체험이 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일 테다.

소설 ‘장마’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통해 그려진다. 소년의 외삼촌은 국군이고 소년의 삼촌은 빨치산이다. 사돈댁에 의탁하러 온 외할머니와 그런 사돈을 받아준 친할머니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동거인데 하필이면 장마철이어서 날씨마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외삼촌의 죽음을 알리는 전사통지서가 온다.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빨치산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친할머니와 대립하게 된다. 혐오와 증오가 너무나 적나라해서 끔찍할 정도다. 결국 빨치산인 삼촌마저 죽임을 당하면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처지가 된다. 삼촌이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날 삼촌 대신 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온다. 기절해버린 친할머니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구렁이를 달래어 내보내는데 그 과정은 간곡하고 지극하기 이를 데 없어 하나의 진혼굿이라 할 만하다. 정신을 차린 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친할머니가 외할머니와 화해를 하게 된다는 걸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잘 알려진 소설의 줄거리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소설의 첫 문단을 말하기 위해서다. 한국소설 가운데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을 꼽으라면 황석영의 소설인 ‘객지’의 “‘꼭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 그는 혼자서 다짐했다”와 오정희의 소설인 ‘중국인 거리’의 “초조(初潮)였다”를 들 수 있다. 실패하고 실패할지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의 외로운 다짐과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을 느낀 채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확인하는 소녀의 담담한 진술에 담긴 정서가 사무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장마’의 마지막 문장인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역시 끔찍한 일을 겪고 난 소년의 진술임을 고려하면 거기에 담긴 비극의 무게가 오히려 더 실감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장마’의 첫 문단이다. 이 소설은 장마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문장 다음에 이런 문장으로 이어진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소설을 읽어본 이라면 누구라도, 아니 소설을 읽어본 적 없더라도 앞서 소개한 줄거리에 견주어 본다면 이 문장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담겼음을 알아볼 것이다. 이 문장에 사용된 ‘분말’ ‘결정체’ ‘칠흑’ ‘변덕’과 같은 한자어와 ‘몽근 알갱이’ ‘보꾹’ ‘질펀히’와 같은 고유어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을 느낄 수 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대립을 은유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단어의 조합에 주의를 기울이면 ‘몽근 알갱이’와 같은 고유어의 결합에서 ‘두려움의 결정체’ ‘칠흑의 밤’이라는 고유어와 한자어의 결합으로, 그것도 서로의 순서를 바꿔가는 결합으로 이동한 뒤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라며 마침내 모든 게 풀려나와 하나가 되는 장마의 이미지로 수렴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돈 간인 두 할머니의 관계가 변하는 과정을 비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첫 문단의 문장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암시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암시한다. 한 편의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게 이 문장에 담겼다는 점에서 소설을 관통하는 세계관이 담긴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들보다 이 첫 문장을 내가 오래 곱씹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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