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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가장 어두운 새벽에 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의 한 장면. 구 소련 스탈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코로나 시대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모먼트메이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사회적 활동들이 멈추거나 느려졌다. 한국 공연계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런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경험한 우리는 이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무정형으로 공기를 떠다니는 공포스런 존재와 영문도 없이 쓰러져가는 이웃들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시민들을 소재로 한 미래 예술작품의 소재로 다뤄질 것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대학로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 가운데 뮤지컬 ‘미드나잇’이 있다. 대학로 극장가에선 발열체크를 통과한 관객들이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공연 시작 전 질병관리본부의 주의사항이 담긴 멘트를 들은 뒤 조심스럽게 관람에 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묘하게 현재 코로나 시대의 공포 및 무기력함과 통한다.

정식 제목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아제르바이잔 극작가 엘친 아판디예프의 희곡 ‘지옥의 시민들(Citizens of Hell)’을 토대로 영국 극작가와 작곡가가 공동 창작한 뮤지컬이다. ‘액터뮤지션’은 노래, 연기, 연주를 모두 해내는 배우 겸 연주자를 일컫는 단어로 이들에 의해 공연이 이뤄진다.

배경은 스탈린 시대의 소련. 1937년 12월 31일 자정 직전, 벽 너머로 옆집의 대화소리도 들리는 공동 주택에 사는 한 부부에게 미스테리한 방문자가 찾아오면서 극이 시작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비밀경찰 ‘엔카베데’(NKBD) 소속이라고 정체를 밝힌 방문자는 힘든 시대에 서로 의지하며 한해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려는 부부의 공간에 들어와 남편과 부인이 각각 상대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을 폭로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평화롭게 보였던 그들의 삶은 얇은 벽 너머 어디론가 끌려가는 이웃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애써 안정을 취해왔던 시간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음을 보여주며 커다란 균열음을 낸다.

스탈린 시대, 공산정권의 노선과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반체제 인사들은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 살해당하고 암매장 됐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고발하고 생명이 연장되었음에 안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신이라는 바이러스는 사회 전체에 퍼져 모두를 감염자로 만들어 선과 악의 경계를 흐려지게 만들었고, 뒤쳐진 사람들은 잊혀진 시대의 희생양으로 남겨졌다.

이 공연은 한국 현대사에도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 끝까지 항거한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 40주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한 많은 행방불명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희생자들을 과거에는 배신했고 현재에는 폄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 ‘1987’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고 6월항쟁에서 희생된 많은 영령들은 ‘미드나잇’ 속 정서적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제까지 슬퍼하고 숨죽이고 살아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미드나잇’은 뮤지컬 형식을 통해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을 하나의 소박한 쇼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특히 지금 공연중인 ‘액터뮤지션’ 버전은 조연과 앙상블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연주까지 겸하면서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연주와 노래에 춤까지 얹는 아이러니한 쇼로 승화시킨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답다는 5월, 가족의 달인 5월이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길 수 있으려면 5월 광주의 모든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고 죄책감에 잠 못 이루는 가해자들이 증언으로 그들의 악몽을 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 병을 감추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것처럼 비밀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삶에 대한 의지로 혼자서라도 춤추고 노래하는 ‘미드나잇’ 공연은 코로나 시대를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듯 하다.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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