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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인종차별 시간?… 다민족·다세대 품어야

미국 필라델피아 필라안디옥교회는 매주일 다민족, 다세대가 함께하는 선교적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예배당에서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출신 성도들이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호성기 목사<세계전문인선교회 국제대표>


미국 필라델피아 필라안디옥교회는 지난 두 달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5월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 조국 대한민국은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이긴 것 같은데 미국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확진자가 100만명 이상이고 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정치, 경제 및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우울하고 심각하다.

코로나19 때문에 교회는 물론 모든 사업장, 직장도 폐쇄됐다. 그러나 이런 형편 속에서도 온라인으로나마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온라인 예배를 통해 여러 가지 유익한 점들을 많이 체험했지만 어린이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하는 몇 가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 이렇게 신앙생활하다가 영적으로 죽을 것 같다는 것이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습관이 붙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에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누워서 예배를 드리며 ‘이건 아닌데’를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영적인 편안함이 영적인 게으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어린아이들로부터 온 성도들이 이제 2개월 정도 온라인 예배를 드렸는데 자다가 꿈에서도 성전에 나와 예배드렸던 성전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성도가 회개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아무 생각 없이 형식적으로 종교적으로 예배드렸던 과거의 예배를 생각하며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선교적인 교회’는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한 주님을 한 영성으로 한 믿음으로 한 소망을 갖고 예배드리는 예배 공동체다. 로마황제 숭배의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일사각오로 함께 모여 예배드렸다.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흩어져”(벧전 1:1) 땅굴이나 암벽 속에 굴을 뚫고 들어가 그 속에 모여 살며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했다.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그들은 예배 공동체로 살았다.

밧모 섬에 유배 감금됐던 사도 요한이 성령님의 인도로 천국으로 올라가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보며 기록해 그 소망의 메시지를 고난당하는 성도들과 교회들에게 전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5장과 7장에서 요한은 ‘천국의 예배’를 목도했다.

네 생물과 24장로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9~10)라고 주님을 높이는 예배 공동체였다. 사도 요한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천국 예배를 통해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으로 충만했을까.

선교적인 예배는 이 땅에서 천국의 예배를 드리는 예배다. 2가지 성경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흰옷을 입은 다민족이 모여 드리는 예배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28)

미국은 아직도 “주일 오전 11시, 모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인종차별의 극대화가 되는 시간이다”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온다. 다른 나라, 족속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는다. 백인은 백인끼리, 흑인은 흑인끼리, 히스패닉은 히스패닉끼리, 한국인은 한국 사람끼리 모여 예배드린다. 한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천국은 교회를 통해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 상태지만 천국이 실현되고 체험돼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국경도 인종도 초월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왜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을 초월하지 못한단 말인가.

둘째 천국의 예배는 승리자의 예배다. 끝까지 환난과 고통과 역경 속에서 순수한 믿음을 지킨 자들이 드리는 승리자의 예배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실패자가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 부활의 첫 열매, 승리하신 어린 양을 높이는 예배다.

음녀에게 절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이 모여 함께 드리는 천국의 예배, 승리의 예배, 선교적인 예배를 통해 승리의 복음 전파자인 선교사가 계속 배출된다.

다민족과 다세대가 함께 모인 예배 공동체는 다민족과 다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배가 연장되는 삶의 현장에서도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선다. 선교적인 교회는 천국의 예배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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