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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막말한다고 다 ‘스트롱맨’ 아니다



미국 공화당의 밋 롬니 상원의원은 지난 2월 ‘트럼프 탄핵’ 상원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 역사에서 자신과 같은 정당 소속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최초의 상원의원이 됐다. 롬니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냈고, 비록 지긴 했으나 2012년 대선에는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일합을 겨뤘던 ‘왕년의 스타’다. 그런 그가 탄핵 부결 직후 성명을 발표하면서 울먹거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무대다. 부동산 갑부 출신의 플레이보이가 2016년 대선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 뒤 4년 만에 미국 보수의 본류인 공화당을 집어삼켰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요인은 딱 하나다. 트럼프에겐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와 농민으로 대표되는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다는 점이다. 극우 팬들은 트럼프에게 반기를 드는 정치인들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돌팔매를 던진다. 하지만 트럼프가 극렬 팬들의 사랑을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의 안테나는 백인 노동자·농민에게 고정돼 있다. 트럼프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편애한다. 백인 노동자·농민들은 맹목적인 지지로 보답한다. 이런 ‘주고받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트럼프의 정치철학이나 노선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용어 중 하나가 ‘트럼피즘(Trumpism)’이다. 백인 노동자·농민들을 위한 포퓰리즘으로 요약된다. 트럼피즘의 핵심은 ‘반(反)세계화’다. 현실에선 ‘국경 다시 쌓기’로 표출된다. 트럼프는 세계화로 미국 백인 노동자와 농민들이 피해를 봤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트럼프의 고집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나흘 만에 다자 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미국 노동자·농민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생각되는 무역협정을 단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반세계화’는 국제기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트럼프가 코로나19가 한창인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한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다. 트럼프가 권좌에 오른 뒤 미국은 유네스코(UNESCO)와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했다.

트럼프처럼 아킬레스건이 많은 정치인도 없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항상 거짓말을 하며,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성차별주의자이며, 동성애 혐오자이고, 외국인 혐오자이며, 광신자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이런 욕을 먹는 근본적 이유는 막말이다. 트럼프는 최근에도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태생적으로 멍청한(dumb) 사람”이라고 헐뜯었다.

일부 한국 정치인들에게 트럼프의 막말은 방패막이가 됐다. “미국 대통령도 저러는데, 뭐 어떠냐”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다. 올해 미국 대선은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트럼프가 대선에서 져 역사 속으로 퇴장한다면,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막말에 대한 중도층의 반감이 될 것이다. 그래도 트럼프는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고, 이 지지기반에 한해서만은 헌신적이다. 백인 노동자·농민들이 괜히 트럼프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없는 한국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트럼프 흉내를 낸다. 막말을 한다고 해서 다 ‘스트롱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한국 보수의 재건은 품격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 출발점은 막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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