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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품격 ‘얼마나 많은 죄인 회개시켰는지’로 결정

포항중앙침례교회 찬양팀이 지난 1월 경주 켄싱턴리조트에서 열린 전 교인 수련회에서 찬양 인도 전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김중식 목사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기초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교회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권력자도 사장도 회사의 고위임원도 교수도 박사도 나온다. 평범한 직장인과 소상공인도, 어렵게 사는 사람도 나온다. 그런데 교회는 이 모든 사람을 사회적 지위가 아닌 죄인으로 받아야 한다.

교회가 사람을 구원이 필요한 죄인으로 받지 않고 사회적 지위나 힘 있는 사람을 특별하게 대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교회가 사회의 축소판이 되면서 병들게 될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명망 있는 사람은 존경해야 한다. 그래도 교회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는 하나님 앞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고 좋은 교회가 되는 게 아니고 명망 있는 사람이 많다고 성공한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 명사들이 많다는 게 교회의 격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격은 얼마나 많은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나와 새 삶을 살아가느냐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죄인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교회는 힘 있는 사람이 와서 행세하는 곳이 아니다. 죄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곳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나오게 할 때 비로소 세상과 구별된 교회로 존재한다.

사회적 지위를 갖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과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나아만 장군 이야기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왕이 크고 존귀하게 여기는 장군이었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람 나라의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존귀하고 능력이 많은 장군이 안타깝게도 한센병에 걸렸다. 그는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기에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걸린 한센병은 그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는 절망의 병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나아만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장군이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절망과 허무가 있었을 것이다. 권력과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보며 무력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깊은 고뇌와 절망 속에 살아가던 나아만에게 실낱같은 희망의 소리가 들린다.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계집아이를 통해서였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게 가면 나을 수 있을 텐데.’

나아만이 사마리아 성으로 가서 엘리사가 사는 집 문에 이르렀다. 예상과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선지자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내보내 요단강에서 일곱 번을 씻으면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왕하 5:9~10)

나아만은 대노한다. 비록 한센병에 걸렸지만, 아람 나라의 첫째가는 장군인데 엘리사가 아무리 유명한 선지자라도 자기를 이렇게 대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모욕을 받았다는 마음으로 칼을 갈면서 귀국길에 오른다.

어떻게 보면 나아만의 이 행동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나아만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엘리사에게 나아갈 때 장군의 신분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불치병인 한센병 환자로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가 나아만 장군 같은 사람을 엘리사처럼 대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교회는 나아만 같은 죄인이 그분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 죄의 중병을 치료받는 곳이다. 교회는 언제라도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개인도 살고 교회도 산다. 교회가 건강하게 된다.

혹시 교회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편했던 적이 있는가. 나아만처럼 분노해 교회를 떠나려 했던 적이 있는가. 그러나 사회경력과 상관없이 철저하게 죄인으로 받아주는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다.

교회는 인간적 지위를 갖고 특별대우를 받겠다는 그림을 갖고 나오면 안 된다. 나아만의 머릿속에는 엘리사가 자신의 상처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특별한 종교의식의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을 특별대우 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보여야 하는 모습이다. 교회는 죄인을 향해 언제나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길이며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길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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