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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김지방] ‘무모한 도전’이 남긴 것



하루가 멀다 하고 빅뉴스가 쏟아지지만 이 얘기는 꼭 써야겠다. 이번 주말을 마지막으로 끝나는 MBC의 토요일 저녁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보내는 송사(送辭)다. 이 프로그램이 심상찮아 보인 건 ‘무(모)한 도전’이란 이름으로 차승원이 연탄을 나르던 2005년 8월 13일 방영분 때부터였다. 섭씨 35도의 뙤약볕에 흰색 속옷 한 장 입고 연탄공장의 석탄 밭에서 구르던 차승원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누굴 위해, 무엇을 향해 이렇게 뛰고 있는가.”

낄낄거리며 화면을 지켜보던 나도 겸연쩍어졌다. 멀쩡한 남자들이 일부러 석탄 밭을 뒹구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웃는 걸까. 유 반장(유재석)이 “무모한 것에 도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시청자에게 감동과 눈물과 웃음을 전달한다”고 답했지만, 어차피 답은 필요 없었다. 차승원의 질문은 시청자를 향한 질문이었으니까. “우리는 시청자들이 웃으니까 이 짓을 한다. 근데, 너희들은 왜 웃는 거냐?” 무한도전은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오이디푸스가 됐다. 운명을 알게 된 이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운명에 순응하거나, 반항하거나.

그 질문을 던진 뒤 출연자들은 연탄공장 안으로 들어가서 연탄기계와 경쟁을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탄을 던지고 받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운명을 넘어설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운명과 싸우는 영웅, 끝없이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를 연상케 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 마지막 구절은 무한도전의 시놉시스 같다. ‘산꼭대기를 향한 도전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야만 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은 모르지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부조리다. 부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부조리와 대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지난 주말 방영분에서 월정사 혜안 스님이 얘기한 대로 ‘오직 할 뿐’이다. 무한도전은 인생을 축약한 우화였다.

‘무(모)한 도전’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2005년 4월부터 따지면 13년을 꽉 채웠다. 스튜디오 밖으로 뛰쳐나와 작가의 대본과 PD의 의도를 뛰어넘는 (때로는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을 빚어내며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무한도전은 KBS의 1박2일, SBS의 런닝맨 등 이후에 나온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 영감을 주었고, 방송가의 여러 금기를 깨트렸다. PD가 자막의 화자(話者)로 등장해 출연자와 시청자 사이에서 끝없이 상황을 환기했다. 브레히트 희곡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연상케 했다. 이런 자막은 프로그램의 긴장을 살리면서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추동력이었다. 다른 방송사의 이름이나 프로그램을 호칭하는 것도 이전에는 금기였다.

유 반장과 출연자들이 최고의 인기를 얻으면서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자들의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위기에 처한 때도 있다. 김태호 PD는 대한민국 예능에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도전에 뛰어들어 위기를 극복했다. 2007년 댄스스포츠를 시작으로 에어로빅 봅슬레이 레슬링 조정에 도전했다. 슬랩스틱으로 웃기기 위해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었다.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출연진이 정식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진지한 도전이었다. 특히 2010년 방송된 프로레슬링 도전기는 한 편의 명작 다큐멘터리와 같은 감동을 주었다. 무한도전이 시즌제로 다시 돌아와도 좋지만, 이것으로 끝나도 괜찮다. 무한도전은 이미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됐고, 무한도전을 넘어서는 것 자체가 진정한 무한도전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했던 멤버인 정형돈의 컴백을 보지 못해 아쉽고, 무엇보다 무한도전을 볼 때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던 두 딸의 모습이 생각나 아쉽다. 고정 멤버가 되자마자 프로그램이 끝나버린 조세호에게 위로를 보내며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를 건넨다. 무한도전, 그동안 고마웠다.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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