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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칼럼] 왜 개헌하려고 하는가



대통령제는 갈등과 비효율, 부패의 대명사로 전락
수직적 정치에서 수평적 정치로 전환돼야
권력 집중 해소 없는 대통령 연임제는 적절치 않아
내각책임제 요소 강화한 분권형 정부 적극 검토해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에이스모글루(Daron Acemoglu)는 ‘제도의 선택’을 결정적 요인으로 꼽는다. 한쪽은 미국이고 다른 한쪽은 멕시코인 노갤러스(Nogales)라는 도시가 있다. 이렇게 나뉜 지 백 년, 같은 이름을 쓰는 양쪽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한국과 북한, 서독과 동독도 비슷한 예다. 시장경제를 선택한 나라는 번영했고, 계획경제를 선택한 나라는 실패했다. 권력이 이념으로 선택한 제도가 운명을 갈랐다.

정치체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비교해보라.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들 가운데 순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딱 하나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견제, 균형의 원리를 절묘하게 제도화해 놓은 데 있다. 또 초당적 협력(Bipartisanship)이라는 정당 문화도 일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통령제는 갈등과 부패, 비효율의 대명사다.

우리가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한계가 드러난 제도를 바꾸어 새로운 발전의 조건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87년 체제 헌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확립한 위대한 성취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제도 결함을 노출해 왔다. 5년마다 ‘판돈 다 걸고 붙는’ 대선 게임은 적대의 정치구조와 지역주의를 뿌리내렸다. 선거 주기의 불일치는 해마다 전국 선거를 치르도록 만들었다. 선거 과잉은 정쟁 과잉을 불러왔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불행도 그 테두리 안에 있다. 그나마 강력한 리더십을 가정한 5년 단임제는 정쟁에 막혀 효율성마저 잃고 말았다. 이는 여소야대가 되면 더 심각해진다.

따라서 개헌을 하려면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 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가 낡은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수직적 정치에서 수평적 정치로의 전환이다. 분권과 분산, 사회적 합의와 연합의 정치를 통해 권력의 고도가 낮아지는 제도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87년 체제 넘어서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몇 가지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제를 전환시킬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권력 집중 해소 없는 연임제는 임기만 연장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둘째,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하겠다는 지방분권도 구호에 그치고 있다.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에 대한 과감한 변화가 없다. 100만명 도시와 3만명 군이 똑같은 기초자치단체인 불합리를 시정할 자치구조 개편의 방안도 빠져 있다. 행정구역 개편 없는 지방분권은 불균형만 심화시킨다. 셋째,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른바 ‘진보의 의제’를 헌법에 너무 노골적으로 심어놓았다. 경제민주화의 강제 규정, 노동의 경영 참여권, 토지 공개념 강화 등. 헌법상 자유의 가치와 어떻게 조화될지, 자칫 이념 논쟁에 빠져 합의를 불가능하게 하지 않을지 숙고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대통령제의 문제를 고치겠다는 개헌이 내각제나 분권형에 대한 논의를 아예 차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여론은 어떻게 공론화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대통령의 공약이 4년 연임제라고 거기에 맞추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제왕적 대통령제 유지와 선거제도 비례성 원칙 조항은 앞뒤도 안 맞는다. 비례성에 기초한 선거제도는 다당제와 ‘연립정부’와 어울리는 제도다. 여소야대를 전제로 한 대통령제는 잠옷 바지에 넥타이 매는 꼴이다. 야당의 총리 국회 선출안도 미봉책이다. 내각책임제로 운영하면 모를까 총리만 국회에서 뽑으면 그야말로 ‘따로국밥’이 될 수 있다. 차제에 내각책임제 요소를 강화한 분권형 정부의 제도적 틀에 대해 적극적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이미 많은 논의가 진행됐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이유는 없다. 현재의 국회와 정당의 무능 때문에 그리 못 간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 무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과 뗄 수 없다. 오히려 책임정치의 제도적 틀을 강화해야 정당도 국회도 바뀐다.

대통령의 적극적 의지에 힘입어 개헌의 호기가 왔다. 야당들도 합의를 하자고 한다. 굳이 야당이 반대하는데 지방선거 동시 투표를 고집하는 것은 괜한 정략적 의구심만 일으킬 뿐이다. 6월까지 국회에서 만들고 못할 경우 정부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로드맵에 합의하면 된다. 단 합의안이든 정부안이든 ‘왜 개헌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비가 새는 지붕을 고쳤는데 또 비가 새는 우를 범하지 않는 길이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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