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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초→27.26초→26.99초… 달릴수록 빨라지는 이승훈

이승훈이 지난 15일 강릉 오벌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경기에 참가해 역주하고 있다. 뉴시스


타고난 폐활량 기반으로
특유의 막판 스퍼트 자랑
맞수 크라머도 ‘엄지척’

지난 18일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준준결승에서 현장의 각국 지도자들은 한국의 ‘뒷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마지막 3바퀴를 남긴 때부터 한국은 27.4초, 27.26초, 26.93초의 랩타임이 말해주듯 점점 속도를 높였다. ‘빙속 최강’이라는 네덜란드조차 마지막 3바퀴를 27.07초, 27.57초, 28.03초의 기록으로 돌며 발이 무거워지는 모습이었다.

체력을 안배하다 막판에 모든 것을 쏟는 역전 전략은 이승훈(30)의 트레이드마크다. 이승훈은 다른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과 달리 마지막 몇 바퀴의 랩타임을 점점 줄여가는 특유의 스퍼트를 자랑한다. 상대 선수들이 느려지는 후반 무섭게 치고 나오기 때문에 보는 맛도 있다. 이승훈을 지도했던 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은 21일 “승훈이가 힘을 내며 기록을 점점 줄여주면 얼음판의 지도자들은 너무 신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고 했다.

점점 빨라지는 이승훈 특유의 장거리 주법은 데뷔 때부터 이슈였다. 쇼트트랙에서 전향, 2009년 11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그는 두 번째로 경험한 월드컵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생소한 이름이 기록지에 새겨지자 각국 지도자들이 ‘못 보던 선수인데 대체 누구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쇼트트랙에서 갈고 닦은 곡선주로 코너링 실력, 마라토너 황영조에 비견되던 선천적 폐활량이 급성장의 비결이었다.

이승훈은 바로 이듬해에는 밴쿠버올림픽 5000m와 1만m 시상대에 오르는 ‘사고’를 쳤다. 이때 이승훈과 금메달을 다퉜던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에 얽힌 뒷이야기도 있다. 그때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승훈이 5000m 은메달을 따자, 연습하는 이승훈의 뒤를 크라머가 따라붙었다. 크라머는 이승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너 바퀴를 돌더니 엄지를 치켜들고 사라졌다.

이 장면을 지켜본 김 위원장은 “고수가 고수를 금방 알아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잘 타는 선수에게는 좋은 스케이팅 리듬과 타이밍이 있어서 그대로 따라 타면 빠른 속도에도 별달리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1만m에서는 이승훈이 금메달을 땄다.

외신들은 한국 남자 팀추월 팀을 ‘경험과 젊음의 조합’으로 평가한다. 이승훈은 이제 팀추월 8바퀴 가운데 4바퀴에서 선두를 책임지는 맏형이다. 밴쿠버의 무서운 신인이었지만 어느덧 세 번째 올림픽이다. 이승훈과 함께 뛰는 김민석(19)과 정재원(17)은 모두 고등학생으로, 평창이 첫 올림픽 무대다.

이승훈의 뒷심이 팀추월에 이어 24일 매스스타트에서도 빛날 것인지 역시 관심이다. 그간 유럽 선수들은 절대 강자인 이승훈을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단 감독은 “마지막 1바퀴에서 모두 추월해버리는 이승훈이 얄밉기도 할 것”이라며 “‘협공’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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