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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파벌·약자·불공정… 한국사회 농축된 ‘팀추월 논란’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왼쪽부터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이 21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7∼8위 순위 결정전에서 나란히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여자 팀추월 팀은 19일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멀찍이 떨어뜨린 채 달리면서 ‘노선영 왕따’ 논란을 야기,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이날 경기에서는 3분07초30을 기록, 폴란드(3분03초11)에 4초21 차로 패해 최하위인 8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왕따·약자에 대한 배려 실종 또 하나의 ‘적폐’로 인식
국민청원 이틀 만에 50만 넘어


노선영(29)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은 눈물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 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울었고,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에 나섰다가 또 울었다. 다른 두 선수에 한참 뒤처진 채 혼자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은 ‘왕따’를 연상시켰다.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에 국민들은 실망했고 분노했다. 지난 19일 ‘김보름(25) 박지우(20)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빙상연맹의 적폐를 청산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게시된 이후 불과 이틀 만에 참여자가 50만명을 넘어섰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이 커지자 백철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과 김보름은 20일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하지만 노선영이 곧바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사태가 가라앉기는커녕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번 파문에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파벌, 불공정 관행, 왕따, 약자에 대한 배려 부재, 부당한 권력 사용 등이 고스란히 농축돼 있다.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게 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그대로 반복되는 중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1일 “이번 사태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한 뒤 “최근 확산되는 ‘미투 운동’의 초점은 성추행, 성폭행에 맞춰져 있지만 본질은 ‘권력의 부당한 사용’이다. 특정 선수가 (감독이나 빙상연맹 등의 권력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자 국민들이 분개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는 룰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해 예민한 상태”라며 “김보름이 룰을 지키지 않고 반성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자 국민들이 분노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이 변했다. 예전에는 메달을 따는 선수 개인의 성취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제는 경기 중 선수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더 중요시한다”고 덧붙였다.

노선영은 파벌에 따른 내분으로 메달이 유력한 선수만 따로 훈련했기 때문에 팀워크가 좋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이번 사태가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방향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표팀 내부에 파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선영이 의도적 출전 제한 등 불이익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왕따 문제’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체육계 안팎에서는 올림픽을 마친 뒤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머리를 맞대고 혁신, 쇄신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릉=김태현 황윤태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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