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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사역 터전 잃었지만 찾아가는 전도로 희망 키워

김종익 목사(가운데)가 지난달 29일 교역자 수련회를 마친 뒤 강원도 인제 내린천휴게소에서 교역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다. 염산교회 제공


재개발 공사장 찢어진 가림막 천 사이로 보이는 염산교회.


2007년 12월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일대의 예전 모습(위쪽 사진). 지난해 내내 이 지역 철거작업이 이어졌다. 아래쪽은 지난 10일 주택가가 철거된 자리에 눈이 내린 모습. 아래쪽 상단에 염산교회가 보인다. 염산교회 제공


서울 마포구 염리3재개발구역에 있는 ‘세상의 소금 염산교회’(김종익 목사)는 한때 장년교인 1500명에서 2000명 규모의 중대형교회로 도약을 꿈꿨다. 활발한 지역봉사, 지역문화센터 활동, 노인복지 서비스 등을 통해 지역 주민 대다수는 이미 교회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성실한 목회자와 열정 넘치는 성도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재개발은 모든 상황을 바꿔 놨다. 염산교회가 있는 염리동 일대는 2007년 12월 주택재개발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해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10년 동안 교인 수는 500명 가까이 줄었다. 재개발지역 내 살던 교인 상당수는 뿔뿔이 흩어지면서 결국 교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성도 수는 2000명의 절반인 1000명 수준이다.

위기로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김종익 담임목사를 지난 10일 마포구 대흥로 염산교회 1층 카페에서 만났다. 예상과 달리 그에게서 초조한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교인 수가 늘고 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며 “재개발 덕분에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 건강한 지역 교회가 되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재개발은 염산교회 성도 수를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올해 창립 70주년인 교회의 존립 근간을 뒤흔들었다. 염산교회는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을 기뻐하는 건강한 교회’라는 표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봉사를 중심으로 사역해 왔다. 하지만 재개발 이후 교회 인근 반경 500m 일대 주택가 대다수가 철거되면서 기존 사역지가 통째로 사라졌다. 더불어 살던 이웃은 모두 떠나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염산교회는 교회 본당 옆 사회봉사관 건물에서 노인학교, 어르신작업장, 지역쉼터 등을 운영하며 교회 인근 노년층을 대상으로 사역을 진행해 왔다. 홀몸어르신과 장애인 가정을 위한 반찬봉사, 어린이집 운영도 활발히 이뤄졌다. 노인학교는 처음에는 식사만 제공하다가 치매예방교실, 건강강좌, 노래강습 등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호응이 좋아졌다. 지역 노인 100여명이 매주 교회를 찾았고, 교인으로 등록하는 숫자도 매년 늘어갔다. 서류봉투를 접어 일정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작업장도 최근 10년 동안 활발히 운영됐다. 하지만 재개발지역 지정 후 주민들이 점차 동네를 떠났고, 사회봉사관 건물이 수용되면서 대폭 축소된 노인학교 외 나머지 사역은 모두 중단됐다.

염산교회의 문화동아리 역시 지역 주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외국어, 요리, 악기, 스포츠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또한 재개발 이후 인원이 대폭 줄어 현재는 교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매주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방치료, 물리치료, 발마사지 등 서비스를 제공하던 의료봉사도 이용자가 사라지면서 월 1회로 횟수가 줄었다.

재개발은 사역에 대한 전면 재검토로 이어졌다. 지역 사회를 섬기고 전도로 연결시켜 교회성장을 이룬다는 기존 패러다임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김 목사는 “역설적이게도 재개발 덕분에 기존 전도 개념이나 성장신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며 “성도들이 전도해서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약자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거나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방식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염산교회는 지난해 10월 북한·노숙인봉사 단체, 월드비전, 홀트아동복지회, 밀알복지재단 등의 단체와 협력해 사역박람회를 열며 ‘카도스 전도사랑방’ 사역을 시작했다. 헬라어 카도스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구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뜻한다. 카도스 사역은 교회 성도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것 역시 전도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해는 노숙인 구호시설이나 미혼모 지원 시설 등을 직접 찾아가 시간과 물질을 들여 섬길 계획이다.

김 목사는 재개발 이후의 지역 사역에 대해서도 성장주의보다는 지역 사회를 섬기는 길을 택했다. 염리3재개발구역에는 2021년까지 1671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염산교회가 이전에 마주하던 이웃들이 주로 저소득층과 노년층이었다면, 앞으로 마주할 이웃들은 중산층과 청장년층이다. 이들을 잘 유입시키면 교회 인원이 늘고 재정 상태도 더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염산교회는 공격적 전도 계획을 짜기보다 조만간 지어질 비전센터 공간 일부를 부모·유아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도서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사역 철학을 관철시킨 것이다.

김 목사는 교회 성장 신학에서 탈피해 지역 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먼저 지역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웃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들이 우리 교회를 얼마나 잘 받아들여줬는지 깨달았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고 말했다.

▒ 3344세대 육성 프로젝트
젊은 성도들의 주인의식 길러
미래 이끌 주력세대로 자리매김


교인 수가 급감하고 사역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진 위기 속에서 염산교회가 찾은 돌파구는 3344세대 육성프로젝트다. 올해부터 염산교회 33∼44세 젊은 교인들은 별도 교구로 묶였다. 이들에게는 올 한 해 동안 창립 70주년을 맞은 염산교회 70년사를 직접 펴내라는 과제도 떨어졌다. 특이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에는 젊은 성도들의 주인의식을 키워 교회 미래를 이끌어 갈 주력 세대로 자리매김시키려는 고민이 깔려 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교회 리더십 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익 목사는 지난 10일 인터뷰에서 “교회 리더그룹이 후대에 바통을 넘기질 못하면서 중심활동층 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양육과 관리 대상으로만 머물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3344세대 교구는 미혼자는 본인 나이로, 부부는 아내 나이를 기준으로 편성된다. 처음에는 3040세대로 정하려 했으나 30대 초반과 40대 후반의 세대 차이가 크고, 45세부터 전도회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을 감안했다.

이들은 70년사를 발간하기 위해 우선 2∼10월 매월 한국교회사 강연을 듣는다. 강연을 들은 다음에는 소그룹별로 흩어져 교회 윗세대들을 취재해 교회 역사가 담긴 사진이나 이야기를 발굴한다. 연혁 중심의 딱딱한 형식보다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내용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교회 역사를 체득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김 목사는 “교회 뿌리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신앙의 뿌리를 제대로 세울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주체가 되도록 하려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밝혔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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