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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김윤석 “늘 0에서 시작, 매너리즘 경계해야” [인터뷰]

지난해 ‘남한산성’과 ‘1987’ 두 편의 수작을 선보인 배우 김윤석. 그는 “남한산성은 처음 도전해본 정통사극이었고 1987은 실제를 바탕으로 한 역사극이어서 제게는 두 작품 모두 큰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87’의 극 중 장면. 대공수사처 박 처장이 대학생 박종철군 사망 관련 기자회견 도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답변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다룬 시대극
대공수사처 박 처장 역할 맡아
군사정권 때 절대권력의 위압감
특유의 압도적 연기력으로 표현
박종철 열사의 고교 2년 후배 인연
“역사적 의미 퇴색 안 시키면서
극적 재미까지 갖추기 위해 고민”


“전국 대학에 휴교령이 떨어졌어요. 학생들이 모이면 집회를 하니까요. 저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연습하러 가지도 못했죠. 길거리에서 불심검문 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어요. 그런 걸 겪은 세대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영화 안에 나의 모습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배우 김윤석(50)이 기억하는 1987년의 풍경은 이렇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무거운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 그가 영화 ‘1987’에 출연하기란 여간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건 시대적 가치와 진심이 담긴 영화를 만들겠단 일념 때문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은 “소재가 주는 부담감이 분명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컸다”며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으면서 극적 재미까지 갖춘 좋은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작해 6월 민주항쟁에 이르는 격동의 1987년을 담아냈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6일 만에 관객 247만명을 불러 모았다. 초반엔 ‘신과함께-죄와 벌’의 기세에 다소 밀리는 듯했으나 점차 탄력을 받고 있다. ‘좋은 영화’를 알아본 관객들의 입소문 덕이다.

김윤석이 극 중 맡은 배역은 대공수사처 박 처장. 박종철 사건의 조작·은폐를 주도한 인물이다. 실제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2년 후배인 그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장준환 감독이 나한테 또 이런 역할을 주는 구나 했죠(웃음). 그런데 내가 그걸 하지 않으면 작품이 만들어질 수가 없겠더라고요.”

스크린 속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압도적이다. 애국이란 이름으로 ‘빨갱이’ 색출에 혈안이 된 모습이 섬뜩함을 자아낸다. 매서운 눈빛엔 비뚤어진 신념과 권력욕이 꽉 들어차있다. 세세한 설정들이 곁들여져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M자 이마를 드러낸 ‘올백 헤어스타일’부터 두드러진 하관, 거대한 몸집까지.

김윤석은 “전작 ‘타짜’ ‘황해’ 등에선 개인의 캐릭터를 얼마나 극대화하는가가 관건이었다면 이번엔 시대의 상징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인물에 심어진 권력의 여러 모습들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평안도 사투리는 피나는 반복 연습을 통해 익혔다. 명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서였다. 천부적이라 할 만한 그의 연기력 뒤에는 이런 치열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선배는 어쩜 그렇게 다 버리고 0에서부터 시작하느냐고. 경력이 쌓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되거든요. 늘 경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박 처장은 단순한 악인에 그치지 않는다. 절대권력이 주는 위압감, 그 자체로 존재한다. 김윤석은 “이 영화의 구조가 참 영리하다. 선량한 주인공이 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안타고니스트(적대자)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던진 계란에 결국 바위가 주저앉는다”고 설명했다.

‘1987’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말에 그는 “한국의 레미제라블”이란 비유를 들었다. 내내 울분이 끓어오르지만 그 끝에선 희망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을 곁들이며.

“영화를 보면서 ‘우리 저렇게 뜨거웠을 때가 있었지’란 생각이 드실 거예요. 지난해 촛불정국을 경험한 20대들은 ‘3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겠고요. 앞으로도 우리 국민들은 고난이 닥칠 때 또 힘을 합쳐 헤쳐 나갈 테고, 그때도 다시 촛불을 기억하겠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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