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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시들해질 때 영혼을 깨울 고전을 만나라









고전을 왜 읽어야 할까.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읽는다면, 어떤 고전을 어떻게 읽는 게 좋을까.

‘고전’(홍성사)은 이런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1991년 미국에서 결성된 ‘트리니티 포럼’이 해마다 고전에서 발췌한 글을 함께 읽던 행사에서 비롯됐다. 행사 이후 읽을 만한 책의 리스트를 추천해 달라는 참석자들의 요청에 응답하는 차원에서 1998년 ‘고전으로의 초대장(Invitation to the Classics)’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그동안 기독 문학작품을 꾸준히 내오며 문학을 통한 신앙의 성숙에 주목해 왔던 홍성사가 인문학에 대한 크리스천의 관심이 늘고 있는 현실에 발맞춰 번역해 내놨다.

서두에서 루이스 카우언 당시 미국 댈러스대 교수는 햄릿을 읽다 시들해졌던 믿음을 되찾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통해 고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햄릿 중 한 대목에서 섭리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생각을 포착한 뒤 햄릿을 몇 차례 숙독하면서 셰익스피어의 기독교 신앙을 찾아냈다. 그는 “고전의 주된 가치는 믿음의 자리로 우리를 호출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며 “고전은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자명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그는 또 “고전은 영혼이 그 온전한 수준까지 깨어나게 하는 데 거의 실패하지 않는 과정을 제공한다”며 “고전 한 권을 이해하게 되면, 평생의 친구를 하나 사귄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루이스 카우언 외에 기독교 변증가 오스 기니스, 복음주의 역사신학자 마크 놀 등 다양한 저자들이 BC 750년부터 20세기까지 서양 고전 65권을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읽어나간다.

오스 기니스는 17세기 천재적인 수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를 이렇게 소개한다. “단편적이고 미완성의 상태인데도 통찰력 있고 독창적이며, 세련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옹호서이자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그리스도교 저작 중 하나다.”(282쪽) 기니스는 파스칼이 경험한 뜨거운 ‘불의 밤’을 ‘메모리알’(회상기)에 기록해 상의 옷깃에 넣고 꿰맨 채 살아갔다는 일화부터 책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먼저 제시한다. 팡세는 파스칼이 포괄적인 그리스도교 옹호론을 쓰겠다고 결심한 뒤 죽기 직전까지 써 내려갔던 책이다. 파스칼은 큰 종이에 항목을 적고 수직선을 그어 구분한 뒤 항목별로 종이를 최대한 잘게 잘라 주제별로 배열한 조각을 꿰매 묶음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것이 팡세였다.

오스 기니스는 파스칼이 팡세에서 이성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총동원하고, 양극단을 갖고 논증을 폄으로써 인간의 비참한 삶을 조명하고 유일한 답변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이 책에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부터 중세의 대표작 단테의 ‘신곡’, 존 밀턴의 ‘실낙원’ 등을 거쳐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윌리엄 포크너의 ‘내려가라, 모세야’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 조너선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같은 기독교 고전뿐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랄프 왈도 에머슨의 ‘에세이들’,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시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 이르기까지 정치학 서적부터 에세이, 시,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문학, 종교학, 신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 49명이 집필자로 참여해 책을 읽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목해야 할 지점들을 정확히 짚어준다.

가령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대한 해설을 보자. 마릴린 검프 스튜어트 박사는 “이 소설의 아름다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인 핵심은 지상에서 인간이 벌이는 일을 긍정한다는 점에 있다”며 “이 소설의 사건 전체는 영적 이상들이 지상의 가장 뜻밖의 장소와 예상외의 상황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해 준다”고 적었다.(234쪽)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제대로 못 보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독교를 떼어놓고 서양 문학과 역사를 읽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동안 이를 배제한 채 잘못 읽어왔던 서양고전 읽기의 제자리 찾기라고 할 수 있다.

각 장마다 책에 대한 해설뿐 아니라 원서의 대표 구절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이해를 돕는 질문들’을 수록해 생각하며 고전 읽기를 하도록 안내한다. 2018년 새해를 앞두고 고전 읽기에 도전하거나 책 모임을 계획하고 있는 크리스천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만한 책이다.

☞ 고전 읽기 도움되는 책
원전을 다른 장르로 변형한 책·해설서로 작품의 특성과 시대적 배경 먼저 이해를

고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해당 작품을 집중해서 읽기도 해야겠지만, 작품의 장르적 특성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요구된다. 작품 자체를 읽기가 쉽지 않을 땐 원전을 다른 장르로 변형시킨 책이나 해설서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 권의 고전을 통해 다양한 책 읽기가 가능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령 1667년 나온 존 밀턴의 '실낙원'(失樂園)은 고전 서사시 전통 위에 서 있는 마지막 작품으로 불린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추방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사탄이 하나님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 등을 통해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숙명을 이야기한다. 문학 출판사들이 저마다 번역해 내놨다. 최근엔 스페인의 작가 파블로 아울라델이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시킨 '존 밀턴의 실낙원'(이숲)도 나와 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의 '실낙원 서문'(홍성사)은 이제는 고전이 된 고전비평서라 부를 만하다. 그가 웨일스의 한 대학에 초청받아 '실낙원'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루이스는 서사시의 특징을 소개한 뒤, 밀턴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이 작품에서 어떻게 투영돼 있는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비단 실낙원뿐 아니라 밀턴의 다른 작품을 읽는 데는 물론, 단테의 '신곡'이나 '베오울프' 같은 작품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평소 "새 책을 읽은 뒤에는 반드시 옛날 책을 읽으라"고 권했던 루이스의 문학 비평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오독'(홍성사) 또한 읽어보기를 권한다. 기존의 문학 비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책 이전에 독자의 유형을 먼저 살펴본 뒤 진정으로 바람직한 책 읽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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