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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영화 주인공으로 만나다

김수형 영화감독이 9일 경기도 안산 자택 앞마당에 전시된 기독교영화 포스터 앞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간증하고 있다.






1984년 영화 촬영 당시 김 감독(왼쪽) 모습.


영화감독 김수형(72) 샘이깊은교회 장로를 9일 경기도 안산 자택에서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영화포스터 수집벽(癖)이었다. 영화가 좋아 평생 모았다고 했다. 귀한 건 돈을 주고라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렸다. 수집벽은 기독교영화 포스터로 옮아갔다.

최근엔 집 근처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가 모은 영화포스터 1000여점 가운데 기독교영화 포스터 100여점도 전시됐다.

기독교영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한번 열린 그의 말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맨 먼저 가장 아끼는 포스터로 1950년대 국내에서 상영됐던 ‘다비데와 바스시바’를 꼽았다. 영화제목 밑에 ‘감독 헨리 킹. 총천연색 초 거편(超 巨篇). 그레고리 펙·수잔 헤이워드 주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래된 포스터나 사진, 뒷이야기 등을 참 좋아합니다. ‘다비데와 바스시바’라고 번역한 우리 제목도 정감 넘치죠. ‘그땐 그랬구나’ 하고 알 수 있죠.”

그가 영화 ‘십계’를 설명할 땐 성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세와 아론, 바로왕 등 성경 속 인물 이야기를 줄줄 토해냈다. “배우 찰턴 헤스턴, 율 브리너가 나온 영화예요.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은 웅장합니다. 겁 많은 모세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지도자로 거듭난 이야기는 감동적이고요. 사실 십계를 지키며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요. 하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죄를 범하지 않을까’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다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 손양원(1902∼50)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사랑의 원자탄’을 이야기하면서다. “손 목사님은 1948년 여순사건 때 자신의 두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공산당원을 양아들로 삼는 사랑을 실천했지요. 6·25전쟁 때 애양원교회를 지키다가 북한군에 목숨을 잃었고요. 이런 그의 생애는 영화 ‘사랑의 원자탄’을 통해 많이 알려졌답니다.”

‘천지창조’도 추천 영화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를 빚으셨다. 하지만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 노아의 방주와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사건까지. 믿음이 없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명화란다.

‘왕중왕’도 명화 중의 명화로 꼽힌다.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의 걸작으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김 감독은 자신이 수입한 외화 ‘마태복음’과 ‘사울과 다윗’ 이야기도 들려줬다. 영화 ‘마태복음’은 이탈리아의 명감독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가 생전에 방탕한 생활을 회개하며 자신을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던 어머니에게 바친 작품이다. 종교영화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4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개봉한 이중휘 감독의 ‘좁은 길’은 연기자 출신 임동진 목사가 주연을 맡았던 걸작이었다. 남편을 살해한 흉악범을 용서하고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실천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뤄, 그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기술상을 수상했다.

1980년 개봉된 ‘천국의 문’은 방대한 스케일과 과학적 고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입증한 기독다큐멘터리 영화였다.

1981년에 감독한 고 최자실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로 제1회 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1950∼70년대 기독교영화를 만들거나 수입해 상영하면 흥행에 성공했다고 회고했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기인 데다 진한 감동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기독교영화가 인기를 끌지 못하고 공감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회가 바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기독교영화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제 자신을 겸허히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런저런 인생 사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경제사범으로 구치소에 들어갔던 일, 세상 향락에 취해 주님을 잊고 살다 회개하고 신학을 공부했던 일, 시신경 마비로 사팔눈이 됐다가 기도로 회복된 일, 기독교영화 전문극장을 만들었는데 홍수가 나는 바람에 쫄딱 망한 사연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에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이제 그는 ‘영상 선교사’다. 주님과 함께 ‘인생 2막’의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있다. 153농아인선교회 청각장애인들에게 기독교영화 포스터와 DVD를 보여주고 성경을 감질나게 설명한다.

김 감독은 “기도로 병 고침을 받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믿음을 갖게 됐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안산=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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