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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은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나… 獨 ‘졸페라인’의 비결

도시 재생의 상징이 된 독일 에센 졸페라인을 정문에서 바라본 전경. 거대한 A자 모양의 권양기가 랜드마크처럼 서 있다.


루르뮤지엄 내 전시장


카페 라운지 전경


레드닷디자인뮤지엄의 전시장. 모두 과거의 철골 구조물이 그대로 활용되고 있어 과거로 빠져드는 기분을 준다.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어온 1호 화력발전소인 서울 복합화력발전소(옛 당인리발전소)는 2019년 말까지 시민참여형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시민참여형’에 방점이 찍혔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생각하는 벤치마킹 모델은 바로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Zollverein)’이다.

도시 재생의 전범이 된 졸페라인이 궁금해 지난달 말 에센을 찾았다.

에센 중앙역에서 전철을 타고 졸페라인에 내리니 눈앞에 A자 모양의 권양기(捲揚機·도르래를 사용해 무거운 물건을 끌어올리는 기계)가 거대한 탑처럼 압도하듯 서있다. 이곳 시민의 자랑 ‘에센의 에펠탑’이다. 그 위용은 사진에서 본 바 대로지만 실감은 더욱 거인 같았다.

인구 60만명으로 독일에서 9번째로 큰 이 도시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산업의 젖줄이었다. 1844년부터 가동돼 100년 넘게 광산이 운용됐지만 사양화의 길을 걸으면서 1986년부터 93년에 걸쳐 완전히 문을 닫았다. 활력을 잃었던 도시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문화공간을 만들어 새롭게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00㏊(약 30만평)의 넓은 부지에 20여개의 붉은 벽돌 건물이 크게 A·B·C군 세 덩어리를 이뤄 산재해 있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고가철로도 그대로 남아 공중에서 휘돌고 있었다. ‘과거를 살린 현재’가 평가 받아 2001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에는 탄광박물관인 루르뮤지엄, 레드닷디자인뮤지엄을 비롯해 갤러리 공연장 심포지엄 및 박람회장, 작가 스튜디오 수영장 등이 산재해 있다. 에센의 폴크방조형대학 분교 건물도 있다. 2010년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가 리노베이션해 세련된 터치를 더한 곳들이다.

그래서 관심은 내부도 어느 정도로 보존돼 있는지에 더 쏠렸다. 산업유산 재활용이 외관만 살린 채 내부는 완전히 뜯어내고 전시공간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곧바로 24m까지 올라가야 입구가 나오는 루르뮤지엄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도록 하는 구조라 광부가 갱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석탄을 말리는 설비 등 육중하고 거친 철골 구조물들이 그대로 있다. 탄광 속에 전시장을 차린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광부들이 사용했던 의자 점퍼 모자까지도 유리 진열장 속에 금관처럼 귀하게 모셔져 있었다. 폐광 이후 되살아난 생태계를 보여주는 사진, 광부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그래서 더 감동으로 다가왔다.

디자인뮤지엄조차도 철골 구조물을 건드리지 않은 채 보존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드닷디자인상은 디자인계의 노벨상 같은 상이다. 그 안에 올해 상을 받은 스마트폰 헤드셋 헬멧 청소기 의자 부엌용품 등 각종 제품들이 종류별로 유리 진열장에, 혹은 선반에 진열 중이었다. 세련되고 미끈한 디자인 제품이 거칠기 짝이 없는 쇠기둥에 이렇게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쉬운 건 독일어 설명뿐이라는 점이다. 연간 150만명의 관람객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내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주부 카를라 푸아퐁은 “아들에게 역사 교육을 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머리가 희끗한 이바 채플턴은 “뮤지엄 구경 뿐 아니라 음악 푸드 같은 스페셜 이벤트를 즐기러 쾰른에서 친구들과 왔다”면서 “정말 대단한 곳”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아닌 게 아니라 루르뮤지엄과 레드닷디자인뮤지엄 사이 공터에서는 팝 음악 연주가 한창이었다. 음식 페스티벌도 벌어졌는데 이날은 미슐랭에 소개되는 유명 레스토랑들이 관객들에게 홍보차 저렴하게 제공하는 행사였다.

시끌벅적한 이벤트 장소를 벗어나 오솔길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B군 공간이 나온다. 광부들이 석탄에 찌든 먼지를 씻던 샤워장은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공연 기획자인 토비아스 스타브는 “이곳은 다른 전형적인 무대와 다르다. 광부들이 몸을 씻던 곳이다. 우리 공연의 출발점은 바로 그 역사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졸페라인은 지역주민을 외면하는가. 아니었다. 10여분을 더 걸으니 아이들 놀이터가 나온다. 개를 데리고 편안한 차림으로 산보하러 나온 현지인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수영장은 컨테이너를 뒤집어 만든 것인데,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었다.

보고 먹고 마시고 회의하는 등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산업 유산은 고스란히 간직한 곳. 그러면서도 새로운 활용의 꿈을 꾸는 곳이 졸페라인이다. 졸페라인 홍보담당 델리아 보슈는 “추가 개발이 ‘졸페라인 2020’ 슬로건 아래 진행형”이라며 “폴크방예술대학 건물이 연내 추가 완공되고 호텔도 하나 생겨날 것”이라고 밝혔다.

에센(독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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