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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민주주의 위협하는 4류 정치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정치적 갈등’ 수준이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는 주요 19개국 가운데 1위라는 뉴스 때문이었다. 경제적 지표나 사회·문화 통계의 긍정적 항목이 아닌 부정적 평가에서 1등이라니 부끄럽다.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가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1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지난 2~6월 조사해 비교·분석한 결과다.

국가별로 18세 이상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서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 간에 갈등이 있느냐’는 물음에 ‘강하다(strong)’ 또는 ‘매우 강하다(very strong)’라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이 90%로 가장 높았다. 미국은 88%, 이스라엘이 83%로 뒤를 이었다. ‘매우 강하다’는 답변만 놓고 봐도 한국은 49%로 미국(41%)을 크게 앞섰다. 우리가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 여기고 따라갔던 미국도 지난해 1월 공공연한 대선 불복 주장과 의회 난입 사건, 최근 중간선거를 앞두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노린 극우주의자의 둔기 습격 사건까지 민주주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주창할 때 언급했듯 정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4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등을 해소하고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모아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가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편 가르기를 하며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주말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장외 집회가 격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과 무소속 의원 1명이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취임 6개월 된 대통령에 대해 탄핵당할 만한 실정(失政)을 하지 않았는데도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대선 불복이다.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 고구마줄기처럼 의혹이 불거지는 이재명 당대표를 감싸자고 법도 무시하고 힘으로 대항한다면 폭도나 다를 바 없다. 검찰 수사가 당대표 턱밑까지 향해 오자 민주당은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려지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촛불인가. 10·29 핼러윈 참사 희생자와 유족들의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헤아린다면 이를 정치적 이슈로 몰고 가지는 않을 터다. 슬픔의 유효기간을 자기들끼리 정해 놓고 애도기간이 끝났다고 정쟁으로 치닫는 건 유족의 가슴을 두 번 후벼 파는 일이다. 제2의 세월호로 사건화하며 자기 당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패로 활용해서도 안 될 일이다. 지금은 여야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제대로 고치는 게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잘잘못이 있었다면 잘못한 당사자에게 벌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과거 나라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도는 것을 위정자 탓으로 돌리고 임금을 끌어내리는 때는 아니란 얘기다. 야당으로부터 경질 요구가 빗발치는 장관의 등을 두드려주며 민심에 역행하는 대통령이나 ‘사고’로 축소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여당의 태도도 비겁하다.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인터넷 매체나 동남아 순방에 나선 윤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란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면직 당한 신부 등 온통 세상이 편 가르기에만 골몰하며 중용이나 용서의 미덕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사회통합과 화합을 위해 기도해야 할 성직자마저 증오의 정치판에서 ‘저주의 굿판’을 벌이니 개탄스럽다.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가. 수십년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을 지나 목숨까지 바치며 민주화 투쟁을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더라도 다수가 원하는 대로 합을 맞춰가는 게 민주주의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돌리고 적대시하는 것은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 증오의 정치를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 내편 네편을 가르고 대중을 선동하면서 자기편 들보에는 눈감고 상대방 티끌만 들춰내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세금으로 월급 주기 아깝다는 민심을 정치권은 새겨들어야 한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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