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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산 자의 장례식



미치 앨봄(Mitch Albom)이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이 있습니다. 모리 슈워츠는 브랜다이스 대학의 사회학과 사회심리학 교수였는데 미치는 모리의 제자입니다. 미치는 대학 졸업 후 바빠서 교수님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모리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수는 많이 늙었을 뿐만 아니라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후 미치는 모리 교수가 죽을 때까지 열네 차례에 걸쳐 화요일마다 찾아가서 인생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내용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이 책에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던 모리 교수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조문객들이 관 위에 꽃을 놓으며 작별 인사를 해도 죽은 친구는 듣지 못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리 교수는 자신이 지각이 있을 때 장례식을 미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든 이들을 불렀고 사람들은 눈물로 포옹했습니다.

모리 교수는 앞당겨 죽은 사람이고 그의 장례식은 산 사람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 후 모리는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새롭게 살았습니다. 이 책은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모리 교수만 앞당겨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미리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 2장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원수요 핍박자였던 바울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고백합니다.

그 후 바울의 삶은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바울’이란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계속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과거의 바울은 죽고, 새로운 바울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 가슴에서 뛰는 심장은 한없이 연약하고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앞당겨 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죽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욕망과 교만이 죽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옛사람을 장례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수도사가 되려는 사람의 장례식을 미리 거행했습니다.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 사람이 관 속에 눕습니다. 그 위에 하얀 관보가 덮이고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집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침묵만이 흐릅니다. 한 사람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그 후 부활절 찬송이 울려 퍼지면서 관보가 벗겨지고 누웠던 사람이 나와서 외칩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이제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주님만 위해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수도사의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나는 그때 이미 죽었다. 이제부터는 주님을 향하여, 생명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산다’고 확인하면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욕망과 교만에 대해 스스로 사망 선고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수님 안에서 미리 죽고 새로 살길 원합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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