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5일] 어린이를 받아들이면



찬송 : ‘예수께서 오실 때에’ 564장(통 29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시편 127장 3절, 마가복음 9장 36~37절


말씀 : “하나님께서 한 아이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한 아이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한 아이가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지요. 이러한 신비를 아는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 어린아이들과 연결됩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신앙인이었던 클레멘스 브렌타노(1778~1842)가 남긴 말입니다. 어린이를 예수님처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어린이가 귀하다는 일깨워준 고마운 분이 있습니다. 어린이날을 공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소파 방정환 선생입니다. 선생은 동학의 3대 지도자 손병희의 사위로 동학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내천 사상, 즉 ‘사람 안에 하늘님이 계신다’는 믿음은 천대받던 어린이와 여성을 성인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지요.

방정환이 활동하던 시대는 일제강점기로 조선의 어린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에 더해 식민지배로부터 오는 설움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일본인 학교는 정상적인 초등교육을 실행했지만 조선인 아이들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학교라는 곳에서 일본어와 약간의 조선어, 덧셈 뺄셈 수준의 산수를 배웠습니다.

통치하고 부려먹어야 하니 말은 알아듣게 해야겠고 그렇다고 의식이 깨어나는 교육을 하면 자신들의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으므로 일제는 조선인 어린이들에 대해 교육차별정책을 펼쳤습니다. 1923년에 어린이날이 공포된 건 우리 역사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입니다. 어린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라는 기본적인 선언과 더불어 일제의 부당한 정책에 대한 항거이기도 했기에 그렇습니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건 모든 어른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상’(3절)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37절)라 하셨습니다. 내 자식뿐 아니라 모든 아이를 받아들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오늘날 어린이의 삶은 과거에 비교해 많이 개선됐습니다.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되면서 풍요의 시대를 누릴 뿐만 아니라 교육에 관한 관심과 애정도 상당히 높습니다. 과도함이 어린이의 마음과 영혼에 타격을 주는 시대가 됐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 잘못하면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영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어린이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상이라는 성경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미래로 허락하신 다음 세대, 어린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어린이를 받아들임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임을 기억하겠습니다. 또한 어른들의 실수로 인해 어린이들이 고통받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민대홍 파주 서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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