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6일] 하나님께 대하여 살라



찬송 : ‘내가 예수 믿고서’ 421장(통 21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로마서 6장 1~14절

말씀 : 자기 부인의 삶을 사셨던 고 이중표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목사님께서 과거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실 때,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매일 찾아와서 그렇게 목사님을 괴롭혔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하도 맘이 상해서 하루는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그 사람을 데려가시든지 어떻게 해주세요”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목사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얘야. 나도 그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구나. 그러니 네가 죽어라. 나도 널 위해 죽지 않았느냐.” 그 음성을 듣고 목사님은 결국 주님과 함께 자신이 죽은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섬겼더니 그렇게 행복한 목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것이 별세(죽음)신앙입니다. 자신은 이미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모든 문제는 자기 자존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존심이 생생하게 살아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살게 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3~8절을 보면 ‘합하여’ ‘함께’ ‘연합한 자’ 등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의 단어들이 무려 9번이나 등장합니다. 즉 우리는 주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강력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주님 생명의 피, 언약의 피로 주님과 우리는 하나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신비한 연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곧 내가 죽은 것이며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나도 새 생명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주님과 연합된 사람입니다. 그것에 대해 바울은 11절에서 새 생명으로 살게 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핵심은 먼저 내가 죽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의미는 ‘죄’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죽은 자는 어떤 반응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운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죄에 대해서는 일체의 촉각을 버리고 반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서 반응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반응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우리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에 살고 무엇에 죽어야 하는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가 죽지 못해 힘든 삶을 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고 사셨듯이, 우리도 오직 주님을 위해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이민홍 목사(화성 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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