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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도덕불감증이 만연한 사회



고대 그리스 이후 중세까지 선은 행복의 중심이라고 여겨졌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덕성을 갖출 때, 특히 정의가 갖춰졌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덕성은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알고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주지주의’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에서 무지와 악을 지식과 덕성으로 대체하면 인간은 행복해진다고 봤다(이종은 ‘정치와 윤리’).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10위권의 선진국이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발표한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전 세계 167개국 중 16위로 작년보다 7계단 상승했다. 그럼에도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한국의 국가청렴도 순위는 세계 180개국 중 32위에 그친다. 아시아에서는 홍콩(12위) 일본(18위) 대만(25위) 등이 우리나라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기구는 “부패인식지수 32위는 세계 10위권 경제력 등 한국의 위상에 비추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해충돌방지법과 청탁금지법의 엄격한 시행, 공익신고자 보호 확대 등을 촉구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K콘텐츠와 K스포츠가 제2의 한류붐을 일으키며 국민의 자존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덕불감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역대 정권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한 현 정부에서마저 위선과 거짓의 모습을 자주 접하다 보니 실망이 더 큰 것일 터다. 과거에는 민주화란 공동선과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온전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사생결단 혈투만 하다 보니 선악을 구분하지 않은 채 자기편의 들보에는 눈감고, 상대방의 티끌은 공격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이번 대선은 불행하게도 누가 훌륭한 리더인가가 아니라 ‘누가 덜 악한가’를 따져 뽑아야 하는 선거가 됐다. 퍼스트레이디 후보가 부도덕성 논란으로 선거 유세에 동참하지 못하는 초유의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자기편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각 당의 해명은 민망할 정도다. 가짜뉴스라거나 당사자들은 몰랐다고 부인하다가 ‘빼박’ 증거들이 나오면 “국민들은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민심을 한참 모르는 말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성남시 공무원을 비서처럼 부리면서 대리약 처방에 장남 퇴원수속을 시키고 카드깡을 해가며 시민이 낸 세금으로 소고기와 초밥 등을 시켜먹은 사람이 ‘경제대통령’이 돼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펴겠다는 대선 후보의 아내라니 참 아이러니다. 어물쩍 사과로 끝낼 일이 아니라 수사받아야 할 사안이다. 이를 풍자로 비꼰 방송사 PD가 하차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걸 보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싶다. 학력 경력 위조 논란에 휩싸여 사과한 또 다른 후보의 아내도 도덕적 흠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자금을 댄 ‘전주’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교수 시절 촌철살인의 바른말을 페북에 쏟아내 팬덤을 이끌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사모펀드와 자녀 입시 비리로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됐다. 재벌 개혁과 평등한 분배를 외쳤던 장하성 주중 대사는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에 이어 2500억원대 투자자 피해를 입힌 동생의 사모펀드에 투자해 환매 관련 특혜를 봤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분이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을 타개하기 위해 청년들에게 분노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사회 고위층에 만연된 도덕불감증이 온 나라를 좀먹고 있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권력을 이용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존경할 만한 인물, 영웅이 사라진 시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닮으라고 할 것인가.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현실 권력은 강한 자와 부한 자를 위해 움직이는 본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 압박하면서 그 권력의 손에 집중된 권한과 재원이 시민사회의 꿈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도자가 민중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민중이 지도자의 선택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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