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2월 29일] 진실은 힘이 있다



찬송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0장(통9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42장 15절

말씀 : 창세기의 마지막은 요셉의 장례인 입관식으로 끝납니다. 경이로운 창조의 과정들을 거쳐 대미를 장식하는 요셉의 죽음은 암울하기보다 아름답습니다. 그의 마지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단지 애굽에서 성공해서가 아닙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배신을 당해도 견딜 수 없는데 요셉은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버림을 받습니다. 사실 죽임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가슴에는 커다란 아픔이 자리 잡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보디발에게도, 감옥에서 유력자들에게도, 그리고 애굽 왕 바로에게 조차도 그는 자신의 처지와 결부된 가족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푸념이라도 할 법한데,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됐다면 당장에라도 바로에게 허락을 받아 군사를 풀어 자신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버렸던 형들을 잡아서 형벌을 주었을 텐데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 과연 요셉은 어떤 마음을 갖고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프고 얽매였던 이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자신의 형들을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사랑하는 동생 베냐민을 보게 됐을 때, 그가 나타내는 반응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을 요셉이 웁니다. 근 10년을 억누르고 있었던 눈물이 형제들을 보자 쏟아져 내립니다. 이는 요셉이 얼마나 자신의 가족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과 진실은 다릅니다. 요셉이 버림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그는 노예가 돼야 했고 그로 인해 가장 황금 같은 젊음의 시기를 비참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로 본다면 그가 보이는 행동이 충분히 극단적이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진실을 붙듭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형들도 자신을 진실하게 사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요셉이 보고 싶었던 것은 위력으로 인한 형들의 굴복이 아니었습니다. 변명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진실한 사랑을 통해 무너진 야곱의 가정에 묶인 결박을 풀어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실로 소망 없이 비극적 결말로 끝날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통해 회복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습니다. 사실을 넘어서는 진실한 사랑이 이 가정의 묶인 것을 풀어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마지막인 요셉의 장례식은 아름답습니다. 진실은 회복을 가져오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 : 주님 항상 진실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혁 목사(변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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